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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 감독 “멜로적 영감? 그런 것 없다” (인터뷰)
엔터테인먼트| 2012-10-18 08:16
멜로영화의 거장 허진호 감독이 ‘위험한 관계’로 돌아왔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행복’, ‘호우시절’등을 연출한 그는 늘 여운을 남기는 남녀의 사랑을 그려내며 영화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 그가 ‘위험한 관계’의 메가폰을 잡았을 때 모두가 의아해했다. 그도 그럴 법한 것이 쇼데를르 드 라클로의 프랑스 소설 ‘위험한 관계’가 원작인 이 작품은 그동안 국가와 시대를 막론하고 영화화됐기 때문. 대표적인 한국판으로는 ‘스캔들-조선남녀지사’(감독 이재용)이 있다.

허 감독 역시 “원작소설이 영화화가 많이 됐기 때문에 처음에는 망설였다”고 운을 뗐다.


“원작소설을 1930년대 상해를 배경으로 찍어보고 싶었어요. 워낙 사람의 심리에 대한 느낌이 잘 표현된 작품이기 때문에 1930년대 상해와 매치가 잘 될 것 같았어요. 화려하지만 불안하고 퇴폐적인 게임을 하는 시대기 때문이죠. 늘 쾌락을 추구하는 게임을 하는 시대와 잘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한 ‘스캔들-조선남녀지사’과 비교가 되기 마련이다. 당시 ‘스캔들’은 수위를 넘는 에로틱한 장면들로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하지만 ‘위험한 관계’는 직접적인 성에 대한 묘사가 없다.

“어쨌든 이 영화는 중국에서 상영이 먼저 이뤄졌잖아요. 중국은 등급 제도가 없어요. (웃음) 대신 이 영화는 관능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직접적인 묘사보다는 인물들의 긴장된 심리 상태와 보이지 않지만 상상을 자극하는 장면이 많아요.”

영화에서 최고의 바람둥이 세이판으로 등장하는 장동건. 그는 앞서 인터뷰 당시 “허진호 감독은 정말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거의 이야기만 나눈 것 같다”고 전한 바 있다.

“특별히 제가 디렉션을 줬다기보다는 그냥 대화를 많이 한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영화를 만들 때 배우랑 상의를 하는 편이에요. 어떻게 보면 배우가 캐릭터를 이끌어나가는 당사자잖아요. 저보다 그 캐릭터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수도 있고요. 배우들과 소통을 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장동건의 상대배우로 내로라하는 중국배우 장쯔이와 장백지가 등장한다. 실제로도 강력한 라이벌로 알려져 있는 두 사람과 함께 호흡을 맞춘 소감은 어땠을까.

“장쯔이는 왕가위 감독 같은 거장과 일한 탓에 훈련이 참 잘 된 배우죠. 굉장히 자신의 상황에 완벽한 배우에요. 촬영장을 즐기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을 하지 않아요. 장백지는 몰입력이 참 강하죠. 한국에서는 ‘파이란’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중국에서는 굉장히 진일보한 배우에요. 또 장백지는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했죠. 장쯔이 역시 강한 역할만 하다가 정숙하고 조신한 여인으로 변신했고요.”

그는 계속해서 배우들에 대한 칭찬을 이어갔다.

“대본이 대부분 아침에 나왔어요. 이미 오래전에 대본이 완성되서 촬영에 임한 것도 아닌데, 다들 너무 성실하게 임해줬어요. 밤늦게 대본이 나와도 바뀌는 경우도 있었고요. 진짜 프로라고나 할까요. 그런 세 사람의 모습에 존경심마저 느꼈어요. (웃음)”

긴박한 전개가 관건인 만큼 세이판과 뚜펀위의 로맨스 신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멜로의 거장인 허 감독이 ‘멜로’를 전혀 제외한 것은 아니었다. 세이판이 뚜펀위 대신 교과서에 구름을 그리는 장면은 동심과 감성을 동시에 자극한다.

“세이판과 뚜펀위를 위한 서정적인 신이 한 장면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장에서 상의하던 중 즉석에서 아이디어가 나온거죠. 멜로적 영감이 어디서 나오냐고요? 그런 게 어딨어요.(웃음) 그저 배우들과 대화하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거죠.”

장동건은 ‘위험한 관계’로 ‘태극기 휘날리며’와 ‘친구’로 굳어진 대표작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가 대표작으로 꼽히는 허 감독 역시 같은 생각일까. 그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대표작을 바꾸자는 얘기를 하긴 했죠. 장동건은 본인이 굉장히 이번에 연기를 잘 했으니 그럴 만도 해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요. 기존의 작품에서 미처 선보이지 못한 다양한 표정들과 매력을 발산했으니까요.”

그는 현재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위험한 관계’로 새로운 시도를 한 그는 다음 작품에서도 역시 변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차기작이 멜로냐고 물으니 “멜로는 전혀 아니다. 이제 멜로는 지겹다”며 웃어 보였다. 과연 그가 차기작에서도 특유의 세심한 연출력과 탄탄한 스토리로 관객들을 사로잡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양지원 이슈팀기자/ @jwon04, 사진 황지은 기자 hwangjieu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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