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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제' 늦게 드러나는 냉혈한 김명민의 진심
엔터테인먼트| 2012-12-04 09:22
[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SBS 월화극 ‘드라마의 제왕’은 흥미진진하다. 드라마 제작사 간의 대결구도도 잘 잡혀있고 진행도 일사천리다. ‘명품 배우’ 김명민의 흡인력은 여전하다.

외주드라마 제작사는 드라마 제작에 필요한 투자를 받아 배우를 캐스팅한다. 그리고 방송 편성을 받아 드라마를 제작해 방송되어 나가는 과정을 거친다. 물론 드라마가 방송이 되면 시청률과 의미라는 평가의 시간도 남아있다. 이 과정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다. 작가, PD, 연기자들의 입장을 조율하기는 더욱 어렵다. ‘경성의 아침’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성민아(오지은)는 이고은 작가(정려원)에게 자신의 분량이 부족하다며 대본 수정을 요구한다. 이고은 작가가 순순히 대본을 고쳐줄 리 없다. 우여곡절 끝에 대본이 수정되자 남주인공 강현민(최시원)이 못하겠다고 난리다. 게다가 강현민은 촬영을 앞두고 음주운전 사고까지 일으킨다.

이처럼 다양한 이해관계를 교통정리하는 해결사가 제작자인 앤서니 김(김명민)이다. 앤서니는 드라마 제작과 방송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드라마를 위해서는 아버지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야쿠자(와타나베)로부터 드라마 제작비를 투자받고, 편성을 위해 방송국 드라마 국장에게 뇌물을 갖다바친다. 드라마 국장이 청렴한 사람으로 바뀌자, 그 방송국 사장에게 먼저 로비를 해놓고 새로 온 그 국장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앤서니는 이처럼 ‘경성의 아침’이라는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뛴다. 월드프로덕션의 앤서니는 자신을 방해하는 제국프로덕션의 오진완 대표(정만식)와 피말리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게임에서 김명민이 한수 위다. 드라마 제작에 관한 한 산전수전 다 겪은 마이더스의 손이다. 수준 낮은 드라마는 참아도, 돈 안되는 드라마는 용서가 안된다.

김명민은 설득력도 갖추고 있다. 김명민은 대본 수정을 망설이는 정려원에게 “프로와 아마 모두 실수를 해. 그런데 아마는 세상 탓을 하고 프로는 여유를 가지고 자기를 돌아보지. 너 같은 아마는 생각하지 못하는 여유”라고 말해 스스로 주제의식의 과잉임을 느껴 대본을 수정하게 한다. 하지만 그런 김명민을 시청자가 응원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드라마 제작과정은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한다. 일주일에 70분짜리 드라마 2개를 만들어내는 곳은 지구상에 한국뿐이다. 김명민은 촬영 테이프를 방송국에 빨리 보내기 위해 무리하게 퀵서비스를 부탁하다 배달원이 교통사고로 죽는 사고까지 발생한다.

김명민은 전반에는 ‘냉혈한’으로 설정돼 있다. 가장 문화적인 느낌이 나야 할 사람에게 가장 비(非)문화적인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김명민은 사실은 인간적인 사람이다. 시각장애인 엄마를 둔 어린 김명민은 등록금을 못내 가난이 싫었지만 ‘수사반장' 등의 드라마를 보면서 제작의 꿈을 키워왔다.

김명민은 제국프로덕션과 내통한 배신자 직원을 자르지 않고 “닥치고 다시 출근해”라는 문자를 보낼 정도로 보스 기질을 지니고 있다. 신인 작가라는 이유도 교체된 이고은 작가를 표시 안나게 복귀시킨 것도 김명민이다. 김명민은 와타나베 회장이 사망하고 드라마 투자금이 철회되자 자신의 직원, 작가, 주연 여배우까지 쌈짓돈을 마련해준다. 김명민에게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는 뜻이다. 김명민은 머리를 써 결국 제국프로덕션의 박근형 회장의 돈으로 드라마 투자금을 마련한다.

드라마 제작과정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충돌과 갈등, 사건 사고에도 긴박하게 이를 돌파해 나가는 김명민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김명민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생기지 않은 건 냉혈한이 변해가는 모습이나, 냉혈한이 지닌 진심과 본체 등을 제작진이 너무 늦게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이미 드라마는 후반에 접어들었다.

MBC ‘마의’에서 시청자들은 천민인 마의에서 신분의 장벽을 딛고 오로지 실력으로 인의(人醫)로 성장하며 인술을 펼치게 될 조승우(백광현)를 초반부터 응원하고 싶어진다. ‘골든타임’에서 병원이라는 조직에서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환자를 최우선시하는 최인혁(이성민)에게 감정이입되는 건 당연하다.

물론 ‘드라마의 제왕’도 외주 드라마의 두 경쟁사, 노회한 실력자인 박근형 회장과 오진완 대표가 있는 제국프로덕션보다는 월드프로덕션의 대표인 김명민의 편을 들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느낌을 더 빨리, 더 강하게 생기도록 만들어야 한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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