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장영 한국금융연수원장
금융정책 수단만으론 해결에 한계
연착륙 위해선 공공부문지원 필요
저소득층 사회안전망 차원 접근을
한국도 가계부채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금융권의 부실과 국가 전체의 부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이 나타나고 있다. 신용도가 낮은 사람이 은행뿐 아니라 비은행 금융사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가 23만명이고 대출 규모는 26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저소득층 채무자이며 최근 상환능력이 저하돼 부실위험이 높다.
가계의 채무상환능력은 개인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로 측정할 수 있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의 비율이 164%까지 높아져 선진국 평균보다 높다고 한다. 서브프라임 위기가 나타났던 해, 미국의 비율은 138%였다. 영국은 180%까지 올라간 적도 있지만 당시 탄탄한 소득 흐름과 낮은 이자율 그리고 안정적 부동산 가격 덕분에 채무상환능력이 유지되면서 별다른 긴장이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반대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집을 팔아도 금융사 부채를 다 갚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주택’ 보유자가 19만명에 달할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저소득층의 가계부채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기 때문에 금융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주는 이른바 ‘체계적 위험’이 발생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러나 가계부채의 상환 부담으로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민간소비가 위축되면 거시경제 운용에 상당한 지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장ㆍ단기 해법은 무엇일까.
첫째, 가계부채는 금융정책 수단만으로 해결이 곤란하다. 탄탄한 소득흐름과 안정적인 자산가격이 유지돼 상환능력이 개선되도록 하는 경제정책이 핵심이란 점을 인식해야 한다. 꾸준한 가처분 소득 증대와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둘째, 개인의 부채조정은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가능성이 상당히 많은 분야다. 신중히 접근하되 채권자는 손실규모 축소, 채무자는 파산 회피, 정부는 주거안정 및 금융 안정 등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시장의 직접 참여보다는 인센티브 방식으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소득 대비 원리금상환비율(DTI)을 민간이 자체적으로 조정할 경우 기간을 무한정 연장할 수 없기 때문에 인하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정부가 목표로 하는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공공의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담보 대비 대출비율(LTV)이 높은 주택의 경우에도 민간금융기관은 리파이낸싱프로그램을 실시할 인센티브가 부족하므로 공공에서 이를 보완해줄 필요가 있다.
셋째, 다중채무자는 개별 은행 차원에서 부채조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채권 금융사 간에 대출회수 경쟁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채무재조정 협상의 기반을 제공하기 위해 정확한 상환능력 분석과 함께 은행권 및 제2금융권이 공조해서 채무 재조정을 위한 협의체를 설립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넷째, 최근 증가 속도가 빠른 제 2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요인을 억제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농ㆍ수ㆍ신협, 새마을금고 등의 여신건전성을 분류하는 기준과 대손충당금을 적립하는 비율을 조속히 강화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다섯째,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경우에 대비, 서민들의 금융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다각적인 보완대책이 필요하다. 특히 미소금융, 햇살론 등 저소득층을 위한 긴급생계자금 지원은 금융정책보다는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 서민금융은 리스크 유형에 따라 상품과 금리를 차별화하는 등 ‘시장친화적’인 방식으로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