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번지
[위크엔드] 최대표밭 중산층 그 달콤함에…정치인 해석은 ‘입맛’ 따라 달랐다
뉴스종합| 2013-01-04 11:51
1992년 대선때 YS 언급으로 첫 등장
DJ는 서민과 비슷한 의미로 유권자에 각인

부자의 상대? 먹고살만한 사람? 개념모호
정책수혜·비판 대상 막연한 구분 속
정부마다 입버릇처럼 “중산층을 위한다”…



선거에서 ‘중산층’은 ‘서민’과 함께 반복적으로, 또 자주 쓰이는 말 중 하나다. 중산층 붕괴의 서막이던 IMF 사태를 불러왔던 정부도, 카드대란으로 중산층의 양극화를 가져왔던 정부도, 집값 폭등으로 중산층에게 절망감을 안겨줬던 정부도 입버릇처럼 “중산층을 위한다”고 외치곤 했다.

총선과 대선 등 주요 선거에서 중산층은 이념적으로 중도, 선거공학적으로는 부유층 하위에서 서민층 상위까지 아우르는 최대 표밭이다. 중산층의 표심은 당락을 좌우했다. 때문에 정치권의 ‘중산층’ 짝사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정부종합청사 이곳저곳에서 현 이명박 정부의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라는 글귀가 들어간 플래카드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또 한 달 뒤 청와대에 들어갈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역시 ‘중산층 70% 재건’을 대선 기간 핵심 의제로 삼았다.

하지만 ‘중산층이 누구인지’ 또는 ‘나는 중산층에 들어가는지’에 대해서는 그 어떤 정치인도 명확하게 답하지 않았다. 때로는 ‘부자’에 상대 개념으로, 때로는 ‘비교적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란 개념으로 사용하며, 정책 수혜의 대상으로 또는 비판의 대상으로 막연하게 구분할 뿐이다.

‘중산층’이란 단어가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등장한 것은 1992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집권 거대 여당이던 민주자유당 후보로 대권을 잡은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중산층의 안정을 도모하고, 중산층을 확충하는 정책 개발에 진력할 것”이라고 언급하곤 했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고성장 시절의 과실을 즐기던 도시 자영업자, 근로자를 위한 정책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상대당 후보였던 김대중 전 평민당 총재의 ‘중산층과 근로자ㆍ농어민을 위한 정당’이란 구호와 대비됐다. 김 전 총재의 ‘중산층’은 상대적으로 좀 더 가난한 대중, 즉 ‘서민’과 비슷한 의미로 당시 유권자들에게 각인됐다.

이 같은 김 전 총재의 ‘중산층’에 대한 시각은 그가 대통령이 된 1997년 이후 보다 명확해졌다. IMF 사태라는 우리 역사 초유의 환란 속에 대통령직에 오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중소ㆍ벤처기업 및 봉급생활자 등 중산층이 튼튼해야 경제가 건전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며 중산층을 위한 금융ㆍ세제 정책을 강조했다. 외환위기 속에서도 직장을 유지하거나 자기 사업을 이어가던, 소위 먹고살 만한 중산층보다 ‘위기에 흔들린’ 중산층을 앞에 둔 것이다. 그가 속해 있던 민주당의 슬로건이 ‘중산층 및 서민의 정당’이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10년 집권을 완성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역시 ‘중산층’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대선 공약집 서문에서 “중산층과 서민이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김 전 대통령의 ‘중산층’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집권 후 언론 인터뷰에서도 “학력이 높고 소득이 높은 상위 중산층은 대체로 보수층으로 분류되는데, 이 계층에서 내가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것만 봐도 내 지지 기반은 급진이 아니다”며 ‘중산층’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역설적으로 ‘중산층’의 민심이반으로 정치적 위기를 겪기도 했다. 소위 ‘먹고살 만한 사람들’에게 세금을 좀 더 내게 하겠다며 펼친 각종 부동산, 대기업 정책들이 ‘반(反)시장, 반(反)중산층’ 정책으로 비친 까닭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당시 한 칼럼에서 “중산층 정치로 선회하라. 참여정부의 국정 원리인 균형, 자치, 원칙과 합리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 다수의 중간 지점에 착지하기에 중산층 정치는 참여정부의 국정 원리에 부합한다”며 노 전 대통령의 시선 반대쪽에 선 중산층을 바라볼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명박 현 대통령, 그리고 뒤를 이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당선에도 ‘중산층’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 폭등, 소득 불평등 심화 같은 전 정부의 ‘중산층 정책 실패’를 파고들어 여야 정권교체를 이끌어냈다. 그래서 집권 초반부터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라는 구호 아래 친(親)기업적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박근혜 당선인의 ‘중산층 70% 재건 프로젝트’는 이런 측면에서 다시 시선을 하향조정한 셈이다. 박 당선인은 “서민 경제를 살리고 중산층을 복원해서 중산층 70% 시대를 열겠습니다”며 하우스푸어, 부채 감면 정책 등을 제시했다. 정당은 그대로지만 중산층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시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진 셈이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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