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일반
해로우 RCA디자인대학장·마이어슨 센터장
뉴스종합| 2013-01-15 11:24
‘돈 되는’ 산업디자인 공공영역으로 확대
사람을 중심에 놓는 디자인 과정 자체가
사회통합 이루기 위한 방법이 될수도



[런던=윤정식 기자] 현대ㆍ기아차 디자인총괄사장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 전 BMW 디자인 총괄책임자 크리스 뱅글(Chris Bangle), 날개 없는 선풍기를 발명한 제임스 다이슨(James Dyson), 런던의 명물 2층 버스를 새롭게 재탄생시켜 세계를 놀라게 한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Ridley Scott)까지.

영국의 왕립예술대학(RCAㆍRoyal College of Art)은 굳이 부가 설명이 필요 없는 학교다. 산업디자인계 최고의 유명인사들을 동문으로 거느리면서 한국에도 명성이 자자하다.

지난해 12월 초 영국 런던 최고의 부촌 켄싱턴 가에 위치한 RCA를 방문했다. 디자인 대학의 데일 해로우(Dale Harrow·사진 왼쪽) 학장과 RCA 부설 산학협력센터인 헬렌햄린센터(Helen Hamlyn Center)를 맡고 있는 제레미 마이어슨(Jeremy Myerson·사진 오른쪽)센터장이 기자를 맞았다.

통상 산업디자인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 기업이 이윤 창출을 위해 만들어낸 ‘돈이 되는 예쁜 디자인’을 말한다. 산업디자이너들이 날라리 사업가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미래에는 이들이 해결사가 된다. 적어도 RCA의 예견으로는 그러하다. 미래 산업디자인의 개념에 대해 마이어슨 센터장은 “산업디자인의 이른바 ‘돈이 되는 시장’이 이제 공공의 영역으로 넓어지고 있다”며 “디자인 만능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변화를 읽고 RCA가 지난 1991년에 설립한 곳이 바로 헬렌햄린센터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디자인센터로 대표적인 수행 과제가 노령화ㆍ헬스케어(AgingㆍHealthcare) 문제다. 헬렌햄린센터의 대표작으로는 지난해 런던 디자인박물관에서 발표한 ‘올해의 디자인’에 선정된 구급차가 있다. 구급차는 생명의 가장 위급한 순간을 다루는 공간임에도 환자는 물론, 의료진에게도 불편함을 감수하게 만든 기존 구급차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마이어슨 센터장은 “그림만 그릴 줄 아는 사람은 ‘디자이너’가 아닌 ‘스타일러’”라며 “RCA가 강점을 보이는 자동차 디자인도 헬렌햄린센터에서는 노령화ㆍ복지문제와 더해지면서 새로운 구급차를 탄생시켰다”고 말했다. 헬렌햄린센터 디자이너들은 6년동안 구급차 실제상황에 동행해 자료를 수집했고, 실물 크기의 모형으로 연구한 끝에 구급 활동의 공간 제약을 대폭 줄인 새 구급차를 선보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가정용 임신테스트기 업체 클리어블루(Clearblue)와의 협업을 통해 태아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현 임신기간의 의료서비스를 임산부들에게 방향을 돌리는 리디자인을 감행 중이다. 임산부의 감정 변화를 연구해 이를 표시화함으로써 임신의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런 공익적 디자인은 복지문제는 해결할 수 있어도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디자인에 걸맞을까? 해로우 학장은 “사회적으로 더 심각한 문제일수록 해결점에 돈이 몰리게 돼 있다”며 “재규어를 새로 구매하는 사람들의 나이가 50대 초ㆍ중반인 것은 여러가지를 설명한다”고 말했다.

해로우 학장은 또 “디자인을 볼 때 과거에는 제품(product)을 봤지만 지금은 과정((process)을 보게 된다”며 “과정을 배우고 나면 완전히 다른 제품을 디자인하거나 디자인과는 상관 없는 문제를 해결할 때도 같은 과정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디자인의 과정이 하나의 ‘문제 해결’ 수단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엔지니어도, 변호사도, 회계사도 할 수 없는 사회통합의 해결책을 디자이너는 제시할 능력이 있다”며 “디자이너 출신 대통령이나 총리도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한국의 공공디자인 수준은 어느 정도에 이르렀을까? 마이어슨 센터장은 “한국은 과거 영국의 기업들보다 산업디자인에서는 매우 큰 족적을 남겼다”면서도 “하지만 아직도 공공디자인은 걸음마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해로우 학장은 “제조업에 치중된 경제정책을 포기하지는 않더라도 결국 창조산업 중심으로 가야 한다”며 “전세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복지’정책을 수립할 때 디자인백그라운드의 공무원이 반드시 참여해야 효율성 있고 실현가능한 복지정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yj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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