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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리더십 속 부처간 환상조율…이런 경제부총리가 성공했다
뉴스종합| 2013-01-17 11:31
“복지를 놓고 대립했다. 재정건전성을 앞세우는 기획재정부와 사회부처 간 이견이 심했다.”

정부가 주관한 한 회의에 참석했던 민간전문가의 말이다.

장관급의 동격 부처가 서로 자기 주장만 하다 보니 정책 이견이 조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부총리 부활을 약속한 주요 배경이기도 하다.

경제부총리의 역사는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초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 김유택 씨를 임명하면서부터다. 이어 장기영ㆍ김학렬ㆍ남덕우 등 3명의 경제부총리는 개발경제 시대를 이끌었다. 장 부총리와 김 부총리는 국내외 비판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으로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건설, 외자 도입, 성장정책을 통해 우리 경제의 발전기초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태우정부 시절 각광받은 부총리는 조순 씨.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외부 압력에 영합하지 않고 뚝심있게 정책을 추진하는 등 포청천의 이미지를 국민에게 심어줬다.

한승수 부총리(1996년 8월~1997년 3월) 시절,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1997년 초 한보사태 등이 터지면서 외환위기의 길로 들어섰다. 힘의 쏠림 현상이 부작용을 불러온 것이다.

외환위기에 직면한 경제부총리는 강경식 씨. 강 부총리는 외환위기의 그림자가 다가오던 1997년 3월 입각해 기아차 사태, 금융개혁 파동 등을 겪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 들어가기 직전 물러났다. 그는 외환위기의 책임을 지고 구속됐다가 무죄 판결로 풀려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는 부총리제를 폐지했다가 경제정책 총괄의 필요성을 느껴 2001년 1월 진념 부총리를 기용하면서 경제부총리제를 부활했다. 당시 ‘경제팀 수장’을 장관급으로 격하한 뒤 각종 시행착오로 아쉬움을 나타냈던 많은 경제관료는 부총리제 재도입을 반겼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부총리 도입은 경제정책을 총괄하면서 일사분란하게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서 “그러나 관치경제를 부활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고 했다.

그는 “경제부총리는 경제와 사회흐름을 파악하고 동반성장과 국민통합, 국민행복, 균형성장 등을 아우르는 인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동석ㆍ최진성 기자/dsch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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