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번지
무소속만 나오면 깜깜이 선거 우려…폐지가 능사는 아냐
뉴스종합| 2013-03-27 11:32
“이 후보는 노란색이니 야당이고, 저 후보는 파란색이니 여당이구먼.”

30년 만에 부활한 지방의회 선거가 치러진 1995년, 정당 명이 없는 선거 포스터가 만들어낸 유권자 나름의 구분법이다. 당시 후보자들 사이에서는 ‘1, 2’ 또는 ‘가, 나’ 같은 앞자리 번호를 받으면 무조건 당선이라는 공식 또한 공공연하게 통했다. 정당공천 없이, 모든 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섰던 초여름의 풍경이다.

지금은 사라진 이 같은 풍경을 내년에 다시 볼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정치 전문가들은 “폐지가 만사는 아니다”고 경계했다. 기존 거대 정당들의 공천이 ‘돈 공천’ ‘내 사람 줄세우기’ 같은 부작용이 있다 해서, 정당의 공천제 자체를 폐지한다면 그에 못지않은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은지 진보신당 대변인은 최근 논평에서 “정당공천이 폐지되면 결과적으로 지역 토호와 기존 정치권 인사 등 거대 정당과 관련된 후보의 난립이 예상되고 정치는 후퇴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당은 공천을 통해 부적격 후보를 걸러내거나, 탈당조치 등을 통해 사후에라도 책임질 수 있지만, 무소속으로 뽑힌 잘못된 후보는 걸러내거나 전횡을 막을 장치조차 없다는 의미다.

유권자들 역시 혼란스러울 수 있다. 광역단체장부터 교육감까지 한번에 7~8개의 투표를 해야 하는 지방선거 특성상, 대부분 무명 인사들이 나서는 후보자들의 이름만 보고 찍는 소위 ‘깜깜이 선거’ ‘눈 감고 찍기’ 투표를 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한상우 한양대 교수는 “정당 공천은 지방차지의 책임성을 제고하고, 유권자에게는 후보자 선택의 기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며 정치권 일각의 폐지 만능론을 경계했다. 무조건 폐지 보다는 기존의 부작용을 수정, 보완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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