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청년 벤처의 아이디어+대기업 대우조선해양 ‘뚝심’
뉴스종합| 2013-04-18 07:47
- 세계 최초 지능형해적방어시스템 탄생


[헤럴드경제=박수진 기자] 지난 15일 서울 가산동 소재의 한 벤처타워에 자리 잡은 특수목적첨단장비 제작업체 제이디솔루션. 15명 남짓한 직원들이 모여있는 112㎡ 크기의 사무실은 사뭇 진지했다. 사무실 한쪽 구석에 마련된 시연실에서는 제이디솔루션이 개발한 고출력지향성스피커를 기반으로 한 지능형해적방어시스템(DAPS)의 시연 작업이 한창이었다. 스피커 볼륨을 전체의 3% 수준만큼 올렸을 뿐인데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스피커의 정체는 이렇다. 가로 77㎝ㆍ세로 109㎝ 크기에 무게는 100㎏정도로, CCTV와 열화상카메라가 각각 한대씩 스피커 윗부분에 장착됐다. 카메라 앞을 지나자 스피커와 연결된 레이더기기 화면에 열화상카메라로 촬영된 기자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다.

범상치 않은 이 스피커는 제이디솔루션이 대우조선해양과 공동 개발한 지능형해적방어시스템(DAPS)이다. 오는 8월께 현재 대우조선이 건조 중인 쿠웨이트 국영선사 KOTC의 원유운반선과 석유제품운반선 5척에 10대가 설치될 예정이다. 

제이디솔루션 직원들이 지능형해적방어시스템(DAPS)에 사용되는 고출력지향성스피커를 점검하고 있다. 고출력지향성스피커는 일반 스피커 1000대가 한꺼번에 출력하는 음향과 맞먹는 크기의 음향 출력이 가능하다.

해적 의심 선박이 반경 약 3㎞ 안에 접근하면 고출력지향성스피커로 접근 금지 경고 방송 및 선내 경고 방송이 이뤄진다. 의심 선박이 계속 접근하면 151~154㏈의 고출력 음원과 물대포, 레이저를 사용해 해적 접근을 무력화시킨다. 공격이 계속되면 선원들은 안전한 공간(시타델)으로 대피해 모니터링을 통해 해적에 대응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자동제어로 이뤄진다. 해상에서 해적 선박을 식별하고 발빠르게 대응해 선원과 선박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전 세계 최초다.

DAPS의 탄생 배경에는 청년 벤처기업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이를 실현하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을 믿고 지원해준 대기업의 ‘뚝심’이 있었다.

제이디솔루션 대표이사 제영호(34) 사장은 해양대 졸업 후 3년 간의 승선 경험과 방산업체에서 터득한 시뮬레이션 기술을 바탕으로 음향, 인공지능, SI(System Integration) 등 각 분야의 청년 개발자 10명과 함께 2009년 제이디솔루션을 설립했다. 

해적보안시스템 제작을 목표로 약 2년에 걸쳐 고출력지향성스피커를 개발했다. 고출력지향성스피커(154db 기준) 한 대에서 출력되는 음향은 일반 스피커(120db) 1000대에서 한꺼번에 출력되는 음향 크기와 맞먹는다. 스피커의 부피는 줄이고 출력되는 음향의 크기를 극대화 해 멀리서도 들을 수 있도록 한 제품이었다.

제 사장은 국내 유수 조선 기업을 찾아다니며 기술을 소개했지만 검증도 되지 않는 영세업체의 기술에 귀기울이는 기업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완성된 기술은 수동형 고출력지향성스피커가 고작이었다. 선박 레이더망과 연결해 일정 반경 내에 해적 선박을 발견하면 자동제어로 물대포, 레이저 등의 공격을 할 수 있는 부가 장치를 구현하겠다는 것도 아이디어에 불과했다. 

제이디솔루션은 지난 2년 동안 대우조선해양과 지능형해적방어시스템(DAPS)을 공동 개발하며 수차례에 걸쳐 실제 선박에 시스템을 설치하고 시운전 점검을 했다. 사진은 지난해 시운전 점검 당시 제이디솔루션직원이 선박에 설치된 DAPS를 다루는 모습.

현실의 벽에 부딪힌 제이디솔루션에 손을 내민 것은 대우조선해양이었다. 선박 보안 시스템 개발을 진행 중이던 대우조선은 제이디솔루션의 사업 계획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미국 유명 스피커업체의 제품도 있었지만 대우조선은 내부 검증 절차 및 실사 작업을 거쳐 제이디솔루션을 파트너사로 선정했다.

박승귀 대우조선 영업설계2그룹 과장은 “네임 밸류 빼고는 기술력에서 전혀 뒤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며 “외국산 장비보다는 순수 국산 기술로 시스템을 개발하고, 되도록이면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을 지원해 경쟁력을 키워보자는 회사 내부 방침에도 맞았다”고 했다.

이후 작업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대우조선은 영업설계2그룹을 중심으로 10여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제이디솔루션을 지원했다.

해적 대응 장비에 대한 필요성 및 고객의 요구사항을 조사해 제공했고, 각 해양 안전 장비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기술을 지원했다. 또 개발 제품의 검증을 위한 시운전 환경도 마련했다. DAPS를 선박에 설치하고 실제 상황에서 시스템 가동 여부 등을 점검하는 방식의 시운전을 지난 1년 동안만 2-3회 실시했다.

DAPS는 이제까지 초기 투자 비용 대비 적자를 면치 못했던 제이디솔루션에도 큰 성과를 안겨줬다. 설립 이후 연매출이 6억~7억원에 불과했던 제이디솔루션은 올해 이미 80억원의 계약을 완료했다. 중국, 스페인 등 해외 바이어들의 투자 제안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현대중공업, 한진중공업 등에도 납품하게 됐다. 경쟁사이지만 “다른 회사에도 납품을 해보는 것이 어떻냐”고 먼저 제안한 것도 대우조선이다.

제 사장은 “우리 같은 작은 기업이 대우조선해양과 공동개발을 한다고 했을 때 ‘대기업은 기술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대우조선은 기술 협력은 물론 이후에도 언론에 우리와 공동개발을 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갑과 을의 관계를 떠나 동반자로의 발전을 할 수 있도록 각 사업 분야별로 지속적으로 협력한다면 국익에도 앞장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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