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구조조정으로 CP 관련 분쟁조정이 잇따르고 있다. ‘대기업’의 이름만 믿고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피해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CP는 1년 이상 장기 자금 조달이 어려운 기업들이 발행한다. 투자자는 90일 정도의 단기간에 높은 이자를 얻을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손실 위험은 크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일건설이 지난 2월1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함에 따라 채권 원리금 회수가 불투명해진 투자자들이 판매 증권사인 동양증권을 상대로 금융감독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사유는 CP 불완전판매이다.
동양증권은 한일건설이 발행한 CP 200억원을 한화투자증권으로부터 인수해 법인과 개인 등 500여명에게 특정금전신탁 방식으로 판매했다. 지난주까지 12건의 분쟁조정이 접수됐고, 1건은 당사자간 합의에 따라 사건이 종결됐다. 나머지 11건은 검토 중이지만 대부분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정확한 물증 없이 쌍방의 주장만 팽팽하면 분쟁을 해소하기는 어렵다”면서 “특히 법원에서 투자 손실액을 확정하지 않는 이상 금감원이 개입할 여지는 줄어든다”고 말했다.
한일건설은 지난 2월28일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났지만 회수 가능 금액, 투자 손실액 등을 논의하는 채권관계인집회는 오는 10일 처음 열린다. 이 때문에 법원이 투자 손실액을 확정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이 투자 손실액을 확정하더라도 보상을 받는 규모는 크지 않을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현금으로 변제받는 비율이 극히 낮다”면서 “이자도 면제토록 해 실제 수령액은 크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조선, 건설, 해운 등 경기민감업종이 줄줄이 쓰러질 경우 투자자 분쟁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투자자가 발행기업이나 판매회사를 상대로 제기하는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면서 “피해 금액이 크면 바로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회사의 불완전판매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녹취, 서면 등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챙겨놓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진성 기자/ipe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