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대상 담보물 어떻게 잡나…”
확실한 기업 선정기준 없어
은행 전산시스템 구현도 못해
한은 기준금리 동결대안
‘성급한 대용물’ 지적도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대안책으로 내놓은 창조형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기술형 창업지원한도 3조원 신설)의 시행이 한달째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선정기준의 모호성, 담보개념의 불확실성, 유사전례의 부재 등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대출 상품을 개발해야 하는 시중은행들은 전례가 없어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고, 개념 파악에도 애를 먹고 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한은과 주요 시중은행은 수차례 협의를 통해 ‘기술형 창업기업’의 개념 정의와 선정 기준에 대한 논의를 벌였다. 한은은 지원 대상의 선정 기준으로 ▷공인된 고급기술 보유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높은 기업 ▷창업 후 7년이 경과되지 않은 기업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실제로 공인된 고급기술의 범위를 어디까지 정해야 할지와 연구개발비 비중의 평가기준 등을 두고 모호하다는 의견이 다수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시중은행들은 필요한 전산시스템 구현엔 손도 못 대고 있는 상황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상품을 만들려면 대출거래 약정서 등에 포함될 제도, 규정, 규약 등을 만들어야 하는데 창업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이라고 할 때 명확한 기준을 세팅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또 은행에선 대출을 주려면 담보가 필요한데 기술력이라는 무형(無形)의 대상을 담보물로 잡기가 어려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한은이 가이드라인을 줘서 일단 움직이긴 하지만 한번도 다뤄보지 않은 프로그램이고 개념도 분명하지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운 상태”라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 은행 측과 시행방안을 논의 중”이라며 “세부 지침을 정해야 하고, 은행들도 얼마를 취급할지 내부승인 절차가 있기 때문에 시행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은은 지난달 은행 전산시스템 정비 등이 완료되는 대로 1~2개월 이내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자금이 필요 창업기업에 실제로 흘러들어 가기까지 수개월 추가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다. 한은은 이달 중순까지 시중은행들로부터 ▷취급희망 규모 ▷대출금리 레인지(범위) ▷상품개발 계획 등을 담은 제안서를 제출받을 계획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한은이 정부와의 정책공조 차원에서 금리 인하의 ‘대용물’을 급하게 찾다 나온 결과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또 김중수 총재가 연일 중앙은행의 신용정책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실제 활용성과의 괴리를 나타내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술형창업지원 프로그램은 발표 당시부터 개념의 불분명성, 은행들의 자발적 활용여부 등에 따라 효율성에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지난해 신설된 영세자영업자 대출연계 특별지원한도(1조5000억원)도 당초 목표의 40% 정도만 대출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서경원 기자/gil@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