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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고도성장 이끈 ‘경제멘토’ 가 주는 교훈
뉴스종합| 2013-05-20 11:14
“천연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한다. 그러자면 노동과 머리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노동으로 경쟁하자면 노사가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하고, 머리로 경쟁하자면 과학기술과 사회 각 분야의 문화수준을 높여야 한다.”(남덕우 전 국무총리 회고록 ‘경제개발의 길목에서’ 중)

고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수 년 전 조언한 말인데, 지금의 상황에서도 이보다 더 나은 해법은 없는 듯하다. 

‘한강의 기적’을 이끈 남 전 총리가 지난 18일 별세했다. 89세. 회고록을 통해 스스로를 “나는 성공한 정책가도 아니고, 성공한 경제학자도 아니었다”고 낮췄지만 그는 모두가 인정하는 유능한 경제관료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재무부 장관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EPB) 장관을 역임하면서 수출 주도의 경제개발 정책을 주도했다. “남 교수, 그동안 정부가 하는 일에 비판을 많이 하던데, 이제 당신도 좀 당해봐.” 1969년 당시 45세의 서강대 교수이던 그에게 재무부 장관 임명장을 주며 박 전 대통령이 농담 섞어 건넨 말이다. 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평가 교수단에 참여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대통령의 눈에 띄었다.

남 전 총리는 재무부 장관 취임사에서 “장관은 과객(손님)에 불과하니, 공무원이 잘해야 경제가 잘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과객’ 생활은 10년이 넘게 이어졌다. 대학교수가 장관으로 왔으니 몇 달 있다 학교로 돌아가지 않겠느냐는 주위의 예상과 달리 그는 4년 11개월간 재무장관, 4년 3개월간 경제부총리라는 역대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1977년 달성한 수출 100억달러와 1인당 국민소득(GNP 기준) 1000달러 돌파 등 한국 경제의 전환점이 된 성과가 모두 그의 재임기간 나왔다. 증권시장 개혁, 중화학공업 육성 등도 남 전 총리의 주도로 이뤄졌다.

1980년대 초 국무총리를 지냈고, 노년에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연구하는 한국선진화포럼을 설립해 경제 현안에 대해 조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자문단 좌장을 맡아 경제정책 밑그림을 그리는 데 역할을 한 남 전 총리는 지난 3월 국가원로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박 대통령 바로 옆자리에 앉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현대화의 주역 남 전 총리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지며, 22일 영결식 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안상미 기자/hu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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