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탐스럽게 핀 분홍빛 작약, 나비 앉겠네…
라이프| 2013-05-21 11:03
사실적 꽃·추상적 배경…사진 이상의 표현



청화백자 항아리에 분홍빛 작약이 가득 꽂혔다. 탐스럽게 핀 작약 위로 오월의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계절의 여왕 오월을 더욱 빛나게 하는 매혹적인 정물화다.

분명 여성화가의 솜씨일 거라 여겨지는 이 정물화는 남성화가 김재학(61)의 작품이다. 김재학은 극사실적인 장미그림을 비롯해 인물, 풍경 등 구상미술 분야에서 발군의 역량을 펼쳐온 화가다. 지난 1990년대 말 ‘숨겨진 자연’이라는 들꽃그림 연작이 삼성그룹 캘린더와 가계부에 쓰이면서 대중과 가까워졌다. 이후로도 우표, 연하엽서 등에 그의 꽃그림은 자주 등장한다.

대상의 재연에 충실한 구상미술가로 폭넓은 팬층을 확보 중인 김재학이 서울 인사동 선화랑(대표 원혜경) 초대로 개인전을 연다.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전시에 김재학은 최근 제작한 작약, 장미, 수국 그림을 비롯해 인물, 풍경화를 출품했다. 

5월의 꽃 ‘작약’을 생생하면서도 세련되게 그린 김재학의 정물화. 72×60㎝. 유화.                                       [사진제공=선화랑]

김재학의 꽃그림은 화병과 꽃의 사실적인 표현과 추상적 배경이 어우러져 그만의 독특한 생동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그림의 주인공인 ‘꽃’은 잎사귀 하나, 꽃술 하나까지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지만 배경은 지극히 과감하게 처리한다. 때문에 기계적인 정밀묘사에 치중하는 기존 정물화와는 궤를 달리하며, 그에게 ‘절제와 중립의 미를 표현하는 작가’라는 평이 모아지게 한다. 특히 노련하고도 세밀한 필치는 사진적 이미지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진 이상의 생생한 시각적 효과를 제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김재학의 꽃그림이 아카데미즘에 충실한 정물화이면서도 더없이 현대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대상을 ‘눈’으로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보고 그리기 때문이다. 아울러 꽃의 싱그러운 표현과 함께 화병을 보다 감각적으로 처리하는 것도 한 이유다.

김재학은 “40년을 그렸지만 정물화, 특히 장미그림은 그릴수록 어렵다”며 “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도, 나만의 개성과 감각적인 요소를 투영하는데 초점을 맞춘다”고 했다. (02)734-0458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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