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서울시 ‘정신질환 노숙인’ 집중 관리
뉴스종합| 2013-06-10 10:43
지난해 12월 서울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 4번 출구. 혹한의 날씨 속, 바깥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출구 앞에 오랫동안 씻지 않은 듯한 이모 씨가 서 있었다. 엉킨 수염에 어깨까지 자란 머리를 한 그에겐 심한 악취가 풍겼다.

가랑이부터 무릎까지 찢어진 바지를 보고 서울시 정신보건상담팀이 새 바지를 주고 갈아입으라고 하자 이 씨는 “삶 자체가 큰 추위야”란 말만 반복했다. 정신보건상담팀은 이후 상담을 위해 11번 시도했으나 이 씨는 상담뿐 아니리 음식물까지도 거부했다. 결국 정신보건상담팀은 이 씨를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진단, 사례회의를 열고 입원시키기로 했다.

응급환자 후송단의 도움을 받아 올해 1월 10일 시립은평병원에 입원한 이 씨는 이름과 생년월일을 답했고,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경찰의 도움으로 찾았다.

같은 달 16일 이 씨는 깔끔해진 모습으로 상담팀에 “감사하고 따뜻한 곳에서 지내니 좋다”며 인사를 건넸다. 3월 26일에는 퇴원 후 자활시설에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일주일 뒤에는 다른 환자들과 탁구를 칠 정도로 호전된 모습을 보였다. 4월 10일 퇴원 후 ‘은평의 마을’에 입소한 이 씨는 3개월 전과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다른 입소자들과 원만히 지내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6개월간 이 씨처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상태에서 장기간 방치된 노숙인 413명 중 277명이 입원하거나 요양 시설 등에 입소했으며, 이 중 238명이 노숙 생활에서 벗어났다고 10일 소개했다.

시는 작년 12월부터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정신과 전문상담팀’을 구성해 8명의 직원이 매주 3회씩 서울역 등 노숙인 밀집지역을 찾아 야간진료를 하고 있다.

상담팀은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증상을 관찰ㆍ기록하면서 노숙인들의 입원ㆍ입소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또 치료받은 사람들이 다시 노숙 생활에 빠져들지 않도록 병원, 시설, 임시주거지를 주기적으로 방문ㆍ상담하고 있다. 노숙인 277명 중 상태가 심각해 은평병원 등 전문의료기관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노숙인은 138명, 재활시설 등에 입소해 치료를 받은 노숙인은 80명이다. 32명은 가정으로 복귀했다.

시는 앞으로 서울역 등 노숙인 밀집지역뿐 아니라 시내 전역으로 상담팀의 활동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지난 2011년 보건복지부 거리노숙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거리노숙인의 61.9%가 알코올 의존 상태이거나 위험 음주를 하고 있으며 11.7%가 정신질환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경호 시 복지건강실장은 “노숙인 중에는 알코올 의존증을 비롯한 정신과적 질환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며 “얼마 전 문을 연 알코올해독센터와 상담팀 간 협력을 통해 노숙인들의 재활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황혜진 기자/hhj638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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