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IT ‘아르고스의 눈’…범죄와의 두뇌싸움…사각지대는 없다
뉴스종합| 2013-07-12 11:11
“아르고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눈이 100개 달린 거인. 눈깔이 100개나 있으니 절대 놓치는 게 없지. 난 모든 걸 보고 빠짐없이 기억하는 사람을 원한다.”

경찰 내 특수조직 감시반의 범죄추적 과정을 그린 영화 ‘감시자들’에서 황반장(설경구)은 신참 하윤주(한효주)에게 감시단이 되기 위해서는 ‘아르고스’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스신화에서 아르고스는 헤라의 명을 받아 암소로 변신한 제우스의 내연녀 이오를 감시한 눈이 100개 달린 거인이다. 잠을 잘 때도 눈을 두 개밖게 감지 않아 한 시도 감시를 늦추는 법이 었다.

‘아르고스가 돼라’는 황반장의 주문은 다시 말해 “보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해내서는 안되고, 보고 싶지 않은 것과 남들이 신경쓰지 않는 모든 것까지 기억하라”는 말의 또다른 표현인 셈이다.

대개 영화가 그러하듯 ‘감시자들’에서도 잔인무도한 범죄자 제임스를 잡는 과정에서 결정적 열할을 하는 것은 주인공이다. 하지만 철저히 계획된 시나리오대로 사각지대를 오가며 범죄를 저지른 용의자의 신원을 파악하고 포위망을 좁혀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진짜 ‘아르고스’는 따로 있다. 


24시간 365일 사방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수 천개의 눈, 바로 CCTV(폐쇄회로 감시장치)다.

영화 속 대사에 빗대자면 ‘사찰’과 ‘감시’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순기능과 역기능 사이의 경계선에 달려있는 게 바로 이 CCTV였다.

범인 색출은 물론 각종 범죄 예방효과에도 불구하고 과거 범죄에 악용되며 푸대접을 받았던 CCTV.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는 ‘범죄ㆍ감시의 도구’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고 첨단 IT기술과 결합한 이른바 ‘지능형 CCTV’로 진화하고 있다.

지능형 CCTV는 사람이 24시간 영상을 보며 감시해야 했던 기존 CCTV의 한계를 뛰어 넘어 CCTV가 촬영한 영상 내의 피사체의 외형과 행동을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식별해 사용자에게 알려준다. 예전과 달리 확실히 스마트해진 것이다.

2008년 당시 한국전자통신학회논문지에 기고된 논문 ‘u-City 환경에서 지능형 CCTV를 이용한 감시시스템 구현 및 감시방법’(김익순ㆍ유재덕ㆍ김배훈 공저)은 “감시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시각으로 인해 그동안 침체됐던 CCTV 시장이 9ㆍ11 테러 이후 보안에 대한 중요성 제고와 사회적 범죄예방에 대한 의식변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맡고 있는 상황에 국내의 첨단 IT기술과의 접목을 통한 지능형 감시시스템으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영화 ‘감시자들’로 돌아가보자. 연이어 두 차례의 ‘완전범죄’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경찰 감시반은 사건 발생 당시 CCTV에 찍힌 그들의 체격을 분석해 두 사건의 범인이 동일인임을 밝혀낸다. 그리고 감시반 경찰들이 기억해낸 주요 용의자의 얼굴 생김새와 체형을 바탕으로 수색지역의 모든 CCTV를 분석, 사건을 풀어갈 첫 열쇠를 손에 쥐게 된다. 이런가 하면 숨가쁘게 진행되는 추격전에서도 CCTV의 활약은 눈부시다.

이처럼 실시간으로 범인을 분석ㆍ추적해 검거하는 ‘영화 같은 이야기’는 이미 실제 범인 검거과정에서 ‘지능형 CCTV’를 통해 현실화하고 있다.

안양경찰서는 지난해 9월, 사건 현장과 주변 CCTV를 보며 용의자를 추적해 검거하는 실시간 범죄추적시스템을 개발해 현장에 투입했다.

과정은 이렇다. 사건이 발생 시 상황실 근무자가 사건을 확인해 용의자의 인상착의와 도주경로가 담긴 영상을 현장 경찰에게 전송한다. 동시에 CCTV는 근무자의 조작명령을 따라 용의자를 따라가 영상을 담아내 실시간으로 현장과 교신, 용의자의 이동경로를 훤히 들여다보며 추적하게 된다.

“고정돼 있던 CCTV의 한계를 극복한 시스템이자 수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안양경찰서는 이 같은 실시간 범죄추적시스템을 활용, 훔친 오토바이를 타고 도주하는 절도 용의자를 사건 접수 6분 만에 검거했다.

CCTV의 진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7월 초, 안정행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지능형 관제서비스’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번 시범사업에 도입되는 서비스는 ‘이상 음원 발생 지역 집중 관제 서비스’와 ‘실종 사회적 약자 찾기 서비스’ 두 가지. 이들은 비명이나 호신용 비상벨을 자동으로 감지해 그 지점을 CCTV가 자동으로 비추는가 하면, CCTV에 비친 얼굴과 실종자 데이터베이스(DB) 내 사진의 신체 특징을 분석해 자동으로 실종자를 찾아준다.

안행부 관계자는 “CCTV와 IT의 결합은 CCTV를 과거 단순히 피사체를 비추는 수동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안전과 교통, 재난에 이르는 다양한 사회문제로 인한 국민의 불안 해소에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눈으로만 파악하는 관제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해 향후 예방적 기능까지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CCTV는 앞으로 친숙한 생활 수호자가 될 것인가, 무서운 존재로 발전할 것인가.

손미정 기자/balme@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