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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떠밀려 내려는 가지만…학교도 숙소도 없는 혁신도시
뉴스종합| 2013-07-31 11:17
방폐장·원전 논란에 사업 우여곡절
한수원 이전 경주 부지 터닦기만

경북 김천 공기관 신청사 공사 한창
인근 KTX 역사 그나마 상황 괜찮아

나주에 자리잡는 인터넷진흥원
이전비용 문제로 부지매입도 못해

2003년 6월,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지방 이전 추진 방침이 발표된다. 지역 정치인과 지방자치단체들은 공공기관 유치에 열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수도권 과밀 해소와 균형 발전이란 대의명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역 이기주의가 전국을 뒤덮으면서 국론은 분열됐다. 10년이 흐른 2013년 7월, 공공기관들이 속속 지방에 새 둥지를 틀고 있는 가운데 갈등의 여진은 이어지고 있다. 혁신도시는 10년, 20년 갈 게 아니다. 영속해야 한다. 유치 갈등을 넘어, 이전 갈등을 넘어 통합과 상생의 길을 열 때다.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갈등이 기다리고 있었다. 더 지원해 달라는 지방정부와 난색을 보이는 중앙정부, 이전 공공기관과 지자체 간 기싸움, 여러 지방자치단체에 걸쳐 있는 혁신도시에서 벌어지는 지자체 간 갈등, 노사 불협화음 등 크고 작은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는 올해 말까지 경북 경주로 이전해야 한다. 그러나 사옥 부지는 터만 닦여 있는 상태로, 오는 2015년 말 준공된다. 사택 부지는 선정조차 못했다. 어디에서 일하고 어디에서 살라는 말인가.

사정은 이렇다. 2007년 1월 한수원 사옥 위치가 경주 동쪽의 양북면 장항리 일대로 결정됐다. 동경주 주민들이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유치 백지화와 신월성 원전 1, 2호기 건설을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터라 도심을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2010년까지 이전을 완료한다는 계획도 나왔다. 하지만 부지 매입은 2010년 10월에서야 이뤄졌다. 한수원은 같은 해 궁여지책으로 법인 주소를 경주로 옮겼고, 일부 직원만 경주로 내려보냈다. 이전 시기는 2014년 말로 늦췄다.

지난 4월 말 경북 김천혁신도시에 처음으로 입주한 우정사업조달사무소

이런 가운데 고리 원전 1호기 완전 정전 사고(2012년 2월) 은폐 파문 수습과 경주시의 강력한 요구로 이전 시기가 1년 앞당겨진다. 정치논리가 끼어들면서 한수원의 이전은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경주시와 한수원은 사택 위치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경주시 측은 도심권에, 노조는 연말에 완전히 이전하려면 주거 공간이 여유로운 울산에 임시 사택을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주 도심 사택에서 사옥까지 가려면 30여분, 울산은 이보다 더 가깝다.

경북 김천시 농소면과 남면 일대 3815㎡ 규모의 혁신도시는 거대한 공사판이다. 한국전력기술, 한국도로공사, 교통안전공단 등 공공기관 신청사 건립 공사가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도로는 정비를 마쳤지만 공사차량만 드나들 뿐이다. 인적도 드물다. 제 모습을 갖춘 우정사업조달사무소 사옥이 되레 어색해 보인다.

김천시 인구는 2010년 13만6000여명에서 2012년 13만5000여명으로 감소했다. 김천시가 2만6000여명의 인구 유입을 기대하며 혁신도시 안착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천혁신도시 준비 상황은 다른 곳에 비해 양호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가장 먼저 입주한 우정사업조달사무소 관계자는 “첫 입주 기관이 겪을 수밖에 없는 불편함을 최대한 줄이려고 김천시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KTX(고속철) 역사가 혁신도시 근처에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다.

KTX 김천구미역에서 혁신도시 부지까지 걸어서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모든 혁신도시에 내재된 갈등 요인에서 김천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참여정부 시절 수립된 공공기관 이전계획이 정권이 바뀌면서 속도감이 현저히 떨어졌다. 자연스레 기반시설 마련도 늦춰졌다. 그런데도 짜인 일정에 맞추다 보니 일부 기관은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곳에 이전할 수밖에 없다. 지자체와 이전 대상 공공기관 간 크고 작은 마찰은 피하기 어렵다.

지자체에서 신경 쓴다고 하지만 직원들은 당장 먹고 자는, 기본적인 것 하나하나가 불편하다. 시 관계자들은 혁신도시 부지와 김천시내가 차량으로 10~15분 떨어져 있어 큰 불편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직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경북 김천혁신도시에는 한국전력기술, 한국도로공사, 교통안전공단 등 공공기관 신청사 건립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여기저기‘ 공사 중’인 김천혁신도시 또한 아직 갈 길이 멀다.                                    김천=하남현 기자/airinsa@heraldcorp.com

아파트 공사는 진행 중이다. 때문에 숙소가 없다. 김천시는 궁여지책으로 혁신도시에서 차량으로 10여분 걸리는 아포읍에 숙소를 마련해 빌려줬다.

학교는 일러야 내년에 생긴다. 자녀를 둔 직원 대부분은 혼자 올 수밖에 없다. 내년 3월 개교 예정이던 초등학교의 개교가 늦춰진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이전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앞으로 내려올 기관도 걱정이 태산이다. 교육 문제나 거처 마련 등 ‘답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혼자 오는 직원들이 상당수인데도 이곳 거주지는 가족을 위한 아파트, 연립주택 일색이다. 원룸은 찾기 어렵다.

이전을 앞둔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정주 여건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지자체는 ‘가족 모두 내려오라’면서 원룸 등 1인용 주거 공간은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부 직원은 이사 대신 출퇴근을 생각하고 있다. 우정사업조달사무소 일부 직원은 서울이나 대전 등지에서 매일 출퇴근한다. KTX역과 가까워 다른 혁신도시에 비해 출퇴근이 용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구 유입이 절실한 김천시는 내심 달갑지 않은 분위기다.

전남 나주는 서울에서 300㎞가 넘는 거리에 있다. 차로 가면 4시간도 더 걸린다. KTX로 가도 2시간53분, 3시간 가까이 걸린다. 교통만큼 교육ㆍ문화 여건도 열악하다.

그래서 공공기관들이 가기 싫어했다. 이전 완료를 앞둔 막판까지도 이런 진통은 이어졌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분리된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은 나주 이전을 거부했고, 결국 세종시행(行)이 결정 났다. 한국인터넷진흥원 역시 몇 달 전까지도 나주 이전을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3일 우정사업정보센터 신청사 현판식이 있었다. 광주ㆍ전남 공동혁신도시로 이전이 확정된 16개 공공기관 중 가장 이르다. 이 센터를 제외하고 대부분 공공기관 부지에선 아직 철골 공사가 진행 중이다. 농식품공무원교육원과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국립전파연구원 등이 올해 말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와 한국농어촌공사,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등은 내년 하반기에 이전이 완료될 예정이다.

첫 삽을 뜨지 못한 곳도 있다. 농촌경제연구소와 인터넷진흥원이다.

인터넷진흥원은 부지조차 매입하지 못했다. 이전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사옥을 지금보다 축소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노사 갈등이 불거졌고, 이전계획 승인 심의가 보류됐다. 일단 이전 후 부족한 공간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노조가 한 발 물러나면서 6월 재심의를 요청한 상태다.

진흥원 관계자는 “승인 심의 보류 이후 상반기 동안 관계 부처와 협의를 거쳤으며, 이전을 마냥 늦출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 일단 예산에 맞게 건물을 짓고 향후 증축하거나 다른 사무실을 빌리는 방안을 노조에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농경연도 기존 부동산이 팔리지 않아 공사가 늦어졌다. 기관 통ㆍ폐합에 따른 영향도 있었지만 사실 부지를 살 돈이 없었던 것이 이전 지연의 가장 큰 이유다. 서울시가 농경연 건물을 사들이면서 현재는 기본 설계를 끝내고 8월 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곳 역시 정주 여건은 미비하다. 특히 대거 미분양 사태로 건설사들은 공공기관 이전 상황을 봐가면서 공사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나주시도 속수무책이다. 우정사업정보센터 직원 40% 정도는 혁신도시 근처에 숙소를 마련했고, 나머지는 광주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경주ㆍ김천ㆍ나주=조동석ㆍ하남현ㆍ안상미 기자/dsch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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