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골프여제’마저 당황스럽게 만드는 홀. 바로 박인비(25·KB금융)가 사상 첫 캘린더 그랜드슬램의 최대 승부처로 꼽은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의 ‘마의 17번홀’이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박인비가 8월1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스 골프장 올드코스(파72·6672야드)에서 개막되는 시즌 네번째 메이저대회 브리티시여자오픈을 앞두고 변덕스러운 날씨와 마의 17번홀을 주요 변수로 예상했다.
박인비는 31일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날씨 변화가 심해서 어제 연습라운드와 오늘 프로암에서 친 코스가 완전히 다른 코스라고 느껴질 정도다. 연습라운드에서 8번 아이언을 들었던 곳에서 오늘은 웨지를 꺼내야 할 때도 있었다”고 했다. 현지 기상예보에 따르면 1라운드 오전에는 비가 내리고 오후에는 시속 30㎞ 안팎의 강풍이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박인비는 베아트리스 레카리(스페인), 조디 섀도프(잉글랜드)와 함께 1라운드 오전조(한국시간 오후 3시3분)에 배정됐다.
박인비는 날씨보다 큰 변수로 벙커와 17번홀 공략을 꼽았다. 올드코스는 비교적 페어웨이가 넓고 평평해서 쉬워 보이지만 112개나 되는 깊은 벙커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만만치 않다. 영국 BBC도 “이 벙커들을 만나지 않는 게 우승의 열쇠다. 타이거 우즈가 2000년 이 곳에서 열린 디오픈에서 우승할 때 72홀을 도는 동안 단 한 번도 벙커에 빠지지 않았다”고 했다.
박인비는 “벙커의 턱이 워낙 높아 앞으로는 도저히 빼낼 수 없어서 옆이나 아예 뒤로 쳐야 하는 경우도 있다. 턱이 높은 벙커에 대비해 60도 웨지도 가져오기는 했지만 56도와 큰 차이는 없을 것같다”고 했다.
특히 443야드 파4의 17번홀이 승부처다.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에서 ‘로드(Road) 홀’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 홀은 티박스에서 바라볼 때 우측 호텔을 끼고 오른쪽으로 휘는 도그레그홀이다. 오른쪽으로 밀리면 아웃오브바운즈(OB) 지역으로 떨어지고, 왼쪽으로 감아치면 러프가 기다리고 있다. 그린 앞엔 악명높은 항아리 벙커가 있다. 토미 나카지마가 1978년 디오픈에서 선두를 달리다가 이 벙커에 공을 빠트려 9타를 잃고 우승을 놓쳤다고 해서 ‘나카지마 벙커’라는 이름이 붙었고, 한 번 빠지면 강한 자력에 빨리듯 도저히 빠져나오기 힘들어 ‘자석 벙커’라고도 불린다. 2005년 디오픈에서 최경주가 세컨드샷을 이 벙커에 빠뜨린 뒤 무려 5타를 잃고 홀아웃했다.
박인비는 “핀이 왼쪽 뒤에 있을 경우 대단히 어려워진다. 핀 앞쪽으로 보내려면 벙커가 위험하고 넘기면 카트 도로까지 갈 것”이라며 “핀이 왼쪽 뒤에 꽂힌다면 보기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해외 언론들은 올드코스가 박인비를 위한 맞춤코스라며 그랜드슬램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골프다이제스트는 “박인비에게 꼭 맞는 코스다. 낮은 탄도의 구질로 바닷바람이 강한 링크스 코스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데다 실수없는 샷,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경기 운영 등이 까다로운 올드코스에서도 빛을 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경빈 J골프 해설위원은 “박인비가 벙커샷을 잘 하긴 하지만 수직으로 퍼올려야 하는 3m 깊이의 벙커들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며 “박인비가 보통 2~3개 대회서 잘 안맞다가 다시 올라오는 경향이 있는데, 최근 두 대회서 주춤한 게 오히려 보약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그랜드슬램에 대한 부담을 떨치고 강한 멘탈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내다봤다.
박인비는 “계속 그랜드슬램에 관한 질문을 받다 보니 이제 무뎌지는 것 같다”고 웃으며 “즐기는 마음으로 편하게 대회에 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