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번지
[위크엔드] 1946년 수표 들고 김구 찾아간 상의…DJ땐 전경련 이끌던 김우중 ‘추락’
뉴스종합| 2013-08-09 11:17
대통령에게 경제단체는 때로는 훌륭한 국정운영의 손발, 때로는 비자금 마련의 창구였다. 민주화 이후에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에 딴죽을 거는 야당 같은 존재도 됐다.

정치인 앞에서 90도로 허리 숙이는 대기업 총수들의 모습도, 마주 앉아 불만을 토로하는 사장단의 불거진 얼굴도 공존하는 정계와 재계의 ‘적과의 동침’이다.

정치와 경제단체의 관계는 1945년 해방 직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84년 만들어진 대한상공회의소가 우리 경제단체의 효시라면 1945년 해방 직후 이승만, 김구 등은 우리나라 현대정치 계보의 시발점이다.

이들에게 당시 유일한 경제단체였던 대한상의는 정치자금 마련의 창구였다. 해방 직후 중국 상하이에서 서울에 도착한 백범 김구 선생의 비서 선우진 씨의 증언에 따르면, 1946년 어느 날 상의 부회장은 “정치자금으로 써 달라”며 300만원짜리 수표를 들고 찾아왔다. 김구는 돈을 받는 대신 이승만에게 갖다주라고 했지만, 돌아온 답은 “이승만에게는 이미 500만원을 보냈고, 상공회의소 공의”라는 말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경제단체의 정치권을 향한 전방위 돈 공세였던 셈이다.

단순한 ‘로비스트’와 ‘접대받는 사람’의 관계에 머물렀던 경제단체와 정치인은 1961년 큰 변화를 겪는다. ‘한국경제인협회’, 지금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만들어진 것이 변화의 계기다.

당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부정축재자로 몰아붙인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독대한다. 재건기금 100억환을 받기 위한 자리였지만, 이 회장의 ‘사업보국(기업을 통해 국가에 봉사한다)’의 경영철학은 당시 절대권력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결국 이듬해 박 대통령은 “흩어져 있는 경제인들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며 이 회장에게 전경련 창립을 제안했다. 전후 폐허 속에서 경제 부흥을 이끌어야 했던 정치권과 집약적인 성장이 필요했던 재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순간이다.

이후 전경련은 박 대통령의 실물경제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며 수출 중심의 중화학공업 발전을 이끄는 ‘파트너’가 됐다. 회관 건물을 수차례 옮기면서도 정문에 박 대통령의 친필 휘호만은 버리지 않는 전경련의 모습도 그때의 향수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또 하나의 경제단체인 ‘무역협회’도 수출의 파트너로 적극 활용했다. 1964년 수출 1억달러 돌파를 목격한 박 대통령은 “수출만이 살길”이라며 이듬해부터 수출진흥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재계의 수출 전문 단체인 무협도 당연히 이 회의의 상시 멤버였다. 박 대통령은 1979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열린 151차례의 회의 중 단 5차례를 제외하고 모두 직접 주재했다. 이 기간 무협은 100억달러 수출의 금자탑을 쌓을 수 있었다.

박 대통령 사후 군사반란을 통해 정권을 잡은 전두환 대통령은 경제단체를 ‘비자금 창구’로 적극 활용했다. 전경련의 주요 회원사인 재계 총수들을 개별적으로 만나며 그룹별로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공공연히 받았다. 당시 전경련을 이끌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조심스럽게 불만과 우려를 표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회장을 바꿔버리자’는 신군부의 압력만 받았을 뿐이다.

결국 대통령을 필두로 한 신군부와 재계의 ‘상납’ 관계는 민주화로 끝나게 된다. 당시 열린 ‘전두환 청문회’와 ‘5공 재판’ 등을 통해 돈을 받은 대통령과 신군부 세력, 그리고 돈을 바친 재계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민주화 이후 등장한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경제단체와 때로는 ‘밀월관계’를, 때로는 ‘전쟁’을 치렀다. 외환위기(IMF)라는 사상 초유의 국가 경제난을 접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전경련을 산업구조 개편의 선봉장으로 적극 활용했다. 또 당시 전경련 회장이던 김우중 씨가 이끌던 대우그룹을 해체시키는 초강수를 두며 재계에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최근 대통령ㆍ정치인, 그리고 재계단체의 관계는 시대 상황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곤 한다. 어떤 단체를 먼저 방문하느냐를 두고, 정권의 역점 추진 사업이 추정되기 때문이다. ‘재계 프렌들리’를 내걸었던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직후 전경련을 방문하며 이후 집권 5년간 ‘허니문’을 예고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첫 경제단체 방문지로 ‘중소기업중앙회’를 택해 ‘경제민주화’ 의지를 강조했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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