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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과 현실사이…박근혜 복지공약 출구전략 ‘딜레마’
뉴스종합| 2013-09-23 11:09
올 세수부족 10조…쓸 돈은 바닥
임기 4년간 60조 필요한 기초연금
수정·재수정 거쳐 결국 ‘차등지급’

“공약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시기 조절 등 완충점 찾을것”




청와대가 ‘불편한 진실’ 앞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지켜야 되겠고, 그러자니 재원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마냥 들어가고, 현실은 그만한 재원을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적 한계’ 앞에서 공약 고수, 공약 축소 또는 포기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26일 발표될 내년도 예산안은 새 정부의 공약 이행과 관련된 로드맵을 확인할 수 있는 단초라는 점에서 청와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여권과 청와대 주변에선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 중 기초노령연금 이행방안이 박 대통령의 ‘불편한 진실’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약은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고집(?)스러운 원칙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국민행복연금위에서 마련한 기초연금 이행방안이 두세 번 이상 청와대로부터 퇴짜를 맞아 수정에 재수정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통령은 어떻게 해서든 공약을 지키는 선에서 마련하라고 주문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측면이 많아 복지부에서 상당히 난감해했다”고 말했다.

실제 기초연금 이행방안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국민행복연금위를 거치면서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지급’이라는 원안에서 후퇴했고, 이 과정에서 대통령과 국민행복연금위, 복지부 사이에 이견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차등지급’으로 후퇴한 과정에서도 소득연계냐 국민연금과의 연계냐를 놓고 청와대와 복지부 간 줄다리기가 컸다고 한다. 이는 예상대로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는 원칙론과 재원부족이라는 현실론이 부딪힌 결과다.

기초연금만 하더라도 대통령 임기 4년간 60조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올해 세수부족만 어림잡아 7조~8조원, 최대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5조7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에도 불구하고 쓸 돈이 바닥난 상황이다.

특히 지난 7월까지 세수진도비는 58.5%(116조4590억원)로 2010년(64.3%), 2011년(65.0%), 2012년(64.7%) 등 과거 같은 기간과 비교해볼 때 6%포인트 밑돌 정도로 최악의 징수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는 ‘지하경제 양성화’는 FIU(금융정보분석원)법의 수정 통과 등으로 인해 장기적인 해결방안일 뿐이다. 사실상 불가능한 공약을 대폭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다는 게 여권의 공통된 시각이다.

솔직하게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는 정치권 안팎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출구전략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여야 대표 3자회동에서도 무상보육과 관련해 국비 보조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조만간 좋은 안을 만들어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때문에 부처에서도 박 대통령의 보편적 복지 주장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현재로선 공약을 축소한다 혹은 포기한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며 “다만 재원부족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큰 만큼 공약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기를 조절하는 등의 완충점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공약 이행을 흉내내다가 다음 정권, 후대에 엄청난 짐을 지우는 복지를 도입한다면 더욱 큰 사단이 벌어질 것이라고도 경고하고 있다.

청와대는 복지공약의 후퇴는 국민적 반발이 클 수밖에 없는 만큼 국민에게 이를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설득하느냐의 문제를 두고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예산안에서 기초연금 외에도 대선공약 중 일부가 상당부분 수정됐다”며 “대통령이 추석 연휴 직후 별다른 공식 일정을 잡지 않은 것도 마지막까지 정부의 입장과 설명을 다듬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한석희 기자/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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