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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는 ‘퍼즐’…그 안엔 시대의 풍경소리가…
라이프| 2013-09-27 11:09
수능 논술 도입한 1993년 ‘반갑다 논리야’
세계화시대 자기계발 욕구 ‘성공하는 사람’
청년실업 등 위로 필요한 시대 ‘아프니까…’

한 시대의 코드 베스트셀러에 고스란히




베스트셀러는 퍼즐이다. 당시엔 모양을 잘 알 수 없지만 긴 목록을 들여다보면 마침내 완성된 시대의 그림을 보여준다. 베스트셀러는 또 시대의 결핍, 빈 자리를 대신 보여주기도 한다. 1993~2013년까지, 지난 20년 ‘베스트셀러 20’으로 본 한국사회의 풍경은 시대와 책이 얼마나 서로에게 기대며 짝하고 걸어왔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90년대는 최근 우리 사회 복고열풍의 진원지라는 점에서 꼼꼼한 읽기가 요구된다. 이때 우리사회는 시대정신의 무거움에서 벗어나 비로소 개인이 날기 시작했다. 개인과 집단의 욕망과 꿈을 향한 도전과 경쟁, 그에 따르는 좌절과 아픔, 치유, 자기반성의 삶의 과정이 베스트셀러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문민정부가 출범한 1993년 베스트셀러 1위를 장식한 책은 위기철의 ‘반갑다 논리야’였다. 1994년부터 대입수능에서 논술 시험을 도입하기로 하면서 논술 대비용으로 떠올라 대형문예물을 제치고 일년 내내 인기를 얻었다. 이희재의 ‘아름다운 여자’, 홍정욱의 ‘7막7장’, 홍신자의 ‘자유를 위한 변명’ 등 꿈을 향한 개인의 도전이 주목을 받았다.

성수대교 붕괴, 김일성 주석 사망, 지존파의 충격, 북한 영변 핵사찰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된 1994년은 민족주의 색채와 함께 역사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됐다. 후에 표절논란을 일으킨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1위),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2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3위), 이인화의 소설 ‘영원한 제국’(7위) 등이 베스트셀러를 장악했다.


1995년은 세계화와 정보화로 새로운 질서가 주어지면서 자기계발에 대한 욕구가 크게 상승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컴퓨터 길라잡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가 나란히 1, 2, 3위를 차지했다. 세계화 시대 필요한 자질을 갖추려는 열공은 경제 불황이 시작된 1996년에 정점에 달했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초학습법’,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뇌내혁명’,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컴퓨터 길라잡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영어의 바다에 빠뜨려라’, ‘인터넷 무작정 따라하기’ 등이 줄줄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장식했다. 그러나 불황에 위로받고 싶은 심리 또한 컸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1위), 김정현의 ‘아버지’(2위)가 베스트셀러 맨 위를 차지했다.

불황의 코드는 한마디로 위로다. 1997년,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을 통과하며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책과 소설이 통했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1’(1997년 1위), 김정현의 ‘아버지’(97년 2위), ‘산에는 꽃이 피네’(98년 1위), 양귀자의 ‘모순’(98년 2위), 김주영의 ‘홍어’(98년 3위),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98년 5위) 등 ‘불황=소설’의 공식을 뒷받침했다.

1999년 경제난국을 헤쳐나온 세상은 변화를 요구했다.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 한국인 비판’, ‘게이츠@생각의 속도’, ‘제3의 길’,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등 현실비판과 미래를 설계하는 책들이 각광을 받았다.

새천년의 시작은 암울했다. 대우와 현대 사태 및 각종 경제비리 사건으로 ‘제2의 IMF’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며 사회분위기가 침체됐다. 가슴 아픈 부정을 다룬 조창인의 ‘가시고기’(1위), 김하인의 ‘국화꽃 향기’(4위)가 대중의 감성대를 울렸다.

2001년 불안하게 출발한 새천년은 개인과 조직에 다시 변화를 촉구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최인호의 소설 ‘상도’,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는 새로운 가치에 목말라하는 시대에 어울렸다.

2002년은 그야말로 소설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기철의 ‘아홉 살 인생’(1위), 공지영의 소설 ‘봉순이 언니’,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3위), 김중미의 ‘괭이 부리말 아이들’(5위), 황석영의 ‘모랫말 아이들’(10위) 등 소설이 꽃을 피웠다. 그러나 이 소설들은 MBC ‘느낌표’에 선정된 책들이었다.

2003년은 경기침체로 인한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 정치권의 지형 변화에 따른 불안감이 커졌다. 이런 속에서 개인들은 재미와 감동을 찾았다. 지식과 교양을 갖춘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준 베르베르의 ‘나무’가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으며, 카툰에세이 ‘파페포포 메모리즈’, ‘포엠툰’ 등이 젊은 감성을 자극하며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이런 양상은 2004년도에도 이어졌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베스트셀러 1, 2위에 올랐다.

2004년, 2005년은 도전의식이 강하게 작용했다.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할 49가지’(1위), 경제경영으로는 드물게 종합 베스트셀러 5위까지 오른 ‘블루오션전략’, ‘설득의 심리학’, ‘긍정의 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등이 큰 사랑을 받았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2006년은 ‘마시멜로 이야기’(1위)를 비롯해 ‘인생수업’, ‘배려’ 등 우화형 자기계발서가 한 해를 이끌었다. 빈익빈 부익부가 점점 심화된 2007년에는 새로운 가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배려’, ‘멘토’, ‘경청’, ‘사람을 얻는 기술’, ‘내려놓음’, ‘청소부 밥’,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 ‘오늘날 세계적 가치’ 등의 베스트셀러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대중의 바람이 담겨있다. 새천년 초부터 이어져온 내 안의 잠재된 능력을 고양시키는 흐름이 터져나온 것은 ‘시크릿’. 2007년에 이어 2년 연속 종합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8년은 경기 침체와 청년실업, 양극화 등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취업을 위한 외국어 도서가 급격히 신장하며 ‘달콤한 나의 도시’, ‘바람의 화원’, ‘눈먼자들의 도시’ 등 TV에서 이슈가 된 도서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현상이 이어졌다.

2009년 금융위기로 상처입은 이들에게 필요한 건 위로였다. ‘엄마를 부탁해’가 한 해를 장식했으며,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 ‘그건 사랑이었네’, ‘세상에 너를 소리쳐’,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등 활로를 모색하는 도전도 이어졌다. 2010년 경쟁과 시장 중심주의의 신자유주의의 종말과 함께 나눔, 공정, 정의 등 새로운 가치가 사회의 화두로 등장하면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2011년까지 주목을 받았다.

청년 실업, 팍팍한 삶이 이어지면서 2012, 2013년은 다시 위로의 시대였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등 힐링 책들이 2013년 상반기까지 이어졌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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