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위크엔드] 2200년 김치의 역사는 한민족 역사... 임진왜란때 고추가루 김치 등장
뉴스종합| 2013-11-08 06:40
[헤럴드경제=백웅기 기자] “밭 두둑에 외가 열렸다. 이 외를 깎아 저(菹)를 담가 조상께 바치면 자손이 오래 살고 하늘이 내린 복을 받는다.(疆埸有瓜 是剝是菹 獻之皇祖 曾孫壽考 受天之祜)”

김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인 중국 ‘시경(詩經)’에 담긴 내용이다. 여기에서 ‘저’가 가리키는 건 소금절임한 채소로, 바로 김치의 원형인 셈이다. 시경이 쓰여진 시기를 대략 2600~3000년 전으로 추정하니 대한민국 최고의 음식브랜드 ‘김치’의 역사도 수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한(漢)나라의 경우 관이 주도해 순무ㆍ죽순ㆍ미나리 등을 이용해 7가지 저를 담가 관리했다는 문헌 기록이 있는데, 이처럼 채소를 염장해 먹는 방식이 BC 108년께 낙랑을 통해 한반도로 전해지면서 비로소 우리 민족도 김치를 먹게 됐다는 게 유력한 설이다. 한민족과 김치의 인연은 2200년 정도되는 셈이다.

일본 도다이사(東大寺)가 소장하고 있는 ‘신라촌락문서’ 등의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 이전부터 김치를 담가먹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농경문화가 발달에 따라 곡류를 주식으로 삼으면서, 곡물 소화를 돕기 위해 염분이 든 채소류를 함께 먹게 된 것이다. 특히 소금이나 장, 술지게미, 식초 등에 여러가지 채소를 절여먹는 방식의 김치는 겨울에 대비해 채소를 저장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도 효과적이었다.

김치를 최초로 우리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고려때에나 가능하다. 고려 중기의 문인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 “순무를 장에 담그면 여름철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이면 겨울 내내 반찬된다”고 기록해 김장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엔 오이ㆍ미나리ㆍ부추ㆍ갓ㆍ죽순 등 김치에 들어가는 채소가 다양해진 것은 물론 파ㆍ마늘ㆍ생강을 사용한 양념형 김치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의 김치는 여전히 장아찌나 소금절임 형태에 그쳤다. 고춧가루나 젓갈을 쓰지 않고 소금에 절인 채소에 향신료를 섞어 재우는 형태라 해서 ‘침채(沈菜)’라는 특유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채소에 소금물을 붓거나 소금을 뿌려두면 숙성되면서 수분이 빠져나와 채소가 물에 잠기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 침채란 말이 나중에 팀채-짐채-김채-김치로 변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치를 담그는 작업을 뜻하는 ‘침장(沈醬)’이란 말도 팀장-딤장-김장으로 변화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선 중농정책에 따라 농업이 권장된 데다 인쇄술 발달로 우리 환경에 맞는 농서가 널리 보급되면서 채소 재배 기술도 향상됐고, 덕분에 김치 종류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한민족 특유의 정서를 상징하는 ‘매운맛’은 임진왜란 이후에나 가능했다. 선조25년(1592년) 왜란을 전후해 일본으로부터 고추가 처음으로 전해진 것이다. 고추는 당시만 해도 독성물질로 여겨져 200여년간 식품으로 활용되진 않았다.

그러다가 19세기 초반부터 김치에 고춧가루가 들어가고, 젓갈이 다양하게 쓰이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농민항쟁 등 당시의 격변하는 사회상이 매운 음식을 찾게끔 했다고 설명하는 이도 있다. 19세기 중반 유학자들이 쓴 책엔 고추ㆍ마늘ㆍ파ㆍ젓갈 등의 양념을 김치에 많이 쓰라는 권유도 있다. 이는 채소를 염장하기 위한 구황식품으로 나라에서 하사하던 소금이 잦은 기근으로 부족했던 탓도 컸다.

이렇게 생겨난 매운 맛에 배추가 결합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과거 김치의 주재료는 오이ㆍ무ㆍ가지ㆍ순무 정도였고, 배추는 지금의 속이 꽉찬 배추가 아니었다. 속이 꽉찬 결구형 ‘조선배추’를 처음 육종하기 시작한 건 1850년대에 중국 산동 지역에서 ‘호(胡)배추’를 들여와 개량한 이후부터다.

조선배추 보급이 퍼진 이후에야 지금의 모습과 유사한 통배추 김치 제조법이 보편화될 수 있었다. 담금법도 장아찌형, 물김치형, 박이형, 섞박지형, 식해형 등으로 다양하게 발달하게 됐고, 제조방법에 있어서도 소금을 털어 토렴하는 절차를 거치는 2단계 담금법으로 발전하게 됐다.

이처럼 김치의 원조격인 저(菹)의 역사는 수천년을 거슬러 간다지만, 지금의 모습을 온전히 갖춘 김치의 역사는 이제 100여년 정도에 그친다. 이에 근대화 시기 민족 정체성을 확보하려 ‘조선의 전통’을 찾는 과정에서 김치를 ‘역사적으로 유구한 우리의 전통’으로 삼았던 데 대한 자각의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한국인은 ‘김치 없이 못 산다’는 사실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어디 가지 않는다.

kgu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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