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예산심사를 막겠다면서 여야가 합의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상설화’ 개혁법안이 국회 행정실에 틀어박혀 먼지만 쌓이고 있다. 버릇처럼 새해 예산안의 법정 처리시한을 넘기는 국회는 이런 합의를 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모습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지난 9월 말 활동을 종료한 예산재정개혁특위에서 예결위 상설화 등 개혁방안에 잠정 합의했다. 340조원에 이르는 국가예산을 고작 두 달 만에 처리하기 어렵고, 현재의 특위 체제로 예산안 심사과정의 투명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개혁특위는 예결위를 상임위원회로 전환하고, 예결위원들의 임기는 2년으로 하는 등의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당내 국회의원들이 돌아가면서 예결위에 투입되는 현재 체제로는 예결위원들의 전문성을 제고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 당시 개혁특위는 “조만간 법률개정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런데 새해 예산안 심사를 앞둔 현재까지도 여야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개정안 마련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 때문에 국회 행정실에 비치된 200여 쪽짜리 개혁특위 결과보고서는 법안으로 거듭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예결위 상설화는 그동안 정부와 여당이 난색을 표했지만, 박근혜 대통령당선인 시절 인수위 회의에서 “예결위 상설화로 예산안 처리가 해를 넘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박 대통령의 공약이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에 새누리당 관계자는 “정기국회와 국정감사 등 빡빡한 국회 일정 탓에 법안 마련을 미처 하지 못했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국회의원들의 ‘밥그릇’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즉 예결위와 기존 상임위 간의 관계설정에 대해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전문성을 높이려면 예결위원들의 타 상임위원 겸임을 금지해야 하는데, 겸임 금지 시 누가 예결위에 가려고 하겠나”라고 했다.
또 예결위가 ‘국가재정법’ 등과 같이 예산ㆍ결산이 직접적으로 관련된 재정법률에 대해 심사권을 가질 것인지, 협의권만을 지닐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예결위 상설화 추진 시, 타 상임위의 예산심사권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의 ‘권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예결위 상설화도 사실상 사문화되기 쉽다”고 전망했다.
김윤희 기자/wor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