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극작과 연출이 처음인 장진 특유의 다변(多辯) 때문이다. 극 중 조연인 훈이 아버지의 당뇨병 근황, 국회의원이 된 40대 훈이의 활동상을 TV뉴스로 깨알같이 전하는 그의 수다는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사족인 경우가 많았다. 1막 학생 시위 진입 등 다소 긴 장면과 유머는 있지만 스토리의 연계성은 떨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전체 감정선을 흐트러뜨리는 역할을 한다.
배경은 1992년인데, 감수성은 그보다 앞선 80년대에 가깝다. 하숙생 지욱이 운동권 여학생 연이를 만나 사랑을 깨닫고(1막), 40대에 잘나가는 공연 연출가가 된 지욱이 첫사랑인 죽은 연이와 닮은 화이에게 끌리는(2막) 내용이 줄거리다.
김준수는 ‘엘리자벳’ ‘모차르트’ 등 연기보단 노래가 주인 뮤지컬에서 돋보였다. 이번에 오열, 분노, 코믹한 연기까지 무난하게 선보인다. 오소연 등 출연 배우들의 가창력과 연기는 나무랄데없이 훌륭하다. 연이 회상 장면에서 미디어파사드 기법을 쓰는 등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연출도 있긴 하다.
16일 개막 첫날 공연시간은 무려 3시간40분이었다. 제작진은 둘째날부터 3시간10분으로 줄였고, 공연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 수정보완하겠단다. 지난 17일 번역 자막 없이 꿋꿋이 관람하던 한 일본 관객은 좋아하는 스타의 노래가 별로 많지 않아서인지 휴식시간에 자리를 떴다. 티켓가격이 최고 14만원이다. 대극장 뮤지컬의 감동을 기대하고 10만원 이상을 기꺼이 치른 관객에게 미완성작을 내놓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연출 태도 아닌가.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