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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적 복음 꽃피운 순교자의 땅…200년만에 큰 영광
헤럴드경제| 2014-02-10 11:41
1791년 12월 8일 전주 남문 밖(현재 전동성당 자리)에서 두 건의 참수형이 벌어졌다. 윤지충과 그의 외사촌 권상연에겐 모친상을 유교식 대신 크리스트교식으로 치렀다는 죄목이 씌워졌다. 이날 참수는 신해박해, 즉 한국 최초의 천주교 박해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대규모 박해의 전주곡이기도 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드물게 자생적으로 크리스트교 포교가 이뤄진 나라다. 자유 의지인 만큼, 박해에 피로 맞섰다. 한국 교회사는 선교보다 순교의 역사에 가깝다.

1801년 노론 벽파는 천주교 신자가 많았던 남인과 시파를 제거하기 위한 명분으로 신유박해를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한국 교회 최초의 선교사인 중국인 신부 주문모를 비롯해 이승훈, 정약용의 형 정약종 등이 처형됐다. 1839년 기해박해 때엔 119명이 투옥ㆍ처형됐고, 1846년 병오박해 때엔 최초의 한국인 천주교 사제 김대건 신부가 순교했다. 박해의 절정이었던 1866년 병인박해 때엔 무려 6000여 신자가 떼죽음을 당했다.


교황청은 지난 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에 대해 시복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시복되는 이들은 신유박해 이전 순교자 14명, 신유박해 순교자 53명, 기해박해 순교자 37명, 병인박해 순교자 20명 등이다. 이미 시성된 정하상과 정정혜의 아버지인 정약종, 신분차별 철폐의 상징인 천민 출신 신자 황일광 등 지난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직접 한국에서 시성한 순교자 103명 이전 세대가 대거 포함돼 있다.

시복식은 오는 8월 13일 방한하는 교황이 같은 달 15일 주재할 것으로 알려진다. 30년 전 시성은 박해 당시 조선 교구를 담당했던 파리외방선교회의 주도로 이뤄졌지만, 이번 시복은 한국 교회의 지속적인 시복시성운동의 결과물이다.

강우일 주교회의 의장은 “염수정 추기경 임명과 더불어 한국 교회가 세계에서 그 위상을 인정받은 결과”라면서 “시성 30주년에 큰 열매를 맺게 돼 기쁘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에 대한 시복 심사가 진행 중이고, 조선시대 순교자인 ‘이벽과 동료 132위’, 20세기 순교자인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에 대한 청원서도 교황청에 제출된 상태다. 대한민국에 성인(聖人), 복자(福者)가 늘어나는 것은 축복이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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