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 수상작인 가와카미 히로미 작가의 원작을 요리만화 ‘고독한 미식가’의 작가 다니구치 지로가 그린 ‘선생님의 가방(세미콜론)’은 아슬아슬하면서도 자칫 신파로 빠질 수 있는 이 로맨스를 담담하고도 품격 있게 펼쳐낸다.
스키코는 외로움에 익숙한 일상을 보내는 서른일곱 살의 혼자 사는 직장여성이다. 약속 없는 저녁이나 휴일에는 동네 선술집의 바에 앉아 홀로 술을 즐기는 스키코는 어느 날 자주 가던 선술집에서 고교 때의 은사 마스모코 하루스나와 마주친다.
부인과 사별한 노신사와 권태로운 일상을 보내던 독신 여성은 어색한 대화를 쌓아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스며들 듯 서로에 대한 감정을 키운다. 삶보다는 죽음에 좀 더 가까운 선생님의 시간, 제대로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자평하는 쓰키코의 시간은 아주 일상적인 공간에서 어울리며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작품의 미덕은 다소 자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소재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로 전개하는 솜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나이 차가 나는 커플이 부딪히게 되는 문제들과 나아가 연애의 보편적인 문제들을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밋밋하기만 인상을 남기진 않는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묘미는 끊임없이 등장하는 술과 안주다. ‘고독한 미식가’로 수많은 독자들의 침샘을 자극했던 다니구치 지로는 다시 한 번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 맛깔 나는 식탁을 차려 이야기에 흥취를 더한다.
서동욱(서강대 철학과 교수) 시인은 “말근 향기를 머금은 따스한 정종 한 잔처럼 인생에 찾아든 사랑 이야기“라고 이 작품을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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