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유괴로 잃은 딸의 빈자리 술로 채우던 아버지, 끝내…
헤럴드경제| 2014-03-05 11:40
누구라도 그랬을지 모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자식을 피눈물 속에 가슴에 묻어야 했다. 그 아빠라면, 당신이라면 무엇으로 살아갈 힘을 얻었겠는가. 암흑같은 6년여의 세월을 술의 힘으로 버텨내던 ‘안양 초등생 유괴 살해사건’의 희생자 이혜진 양의 부친 이창근(53) 씨가 심장마비로 끝내 딸의 곁으로 떠났다.

이 씨는 2007년 12월 25일 유괴됐던 딸이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된 2008년 3월 11일 이후 거의 매일 눈물과 술로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아무 죄없는 딸을 살해한 범인 정성현이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아버지 이 씨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런 금수만도 못한 인간이 목숨으로 죗값을 치른다 한들, 혜진이가 살아돌아올 리 만무하고, 딸을 잃은 아버지 마음의 한 귀퉁이라도 위로해줄 수 없으니까…. 

3년 전, 혜진이 4주기 때 이 씨는 “새끼 먼저 보낸 부모는 한이 맺히는 거다. 한평생, 죽을 때까지…”라며 먼저 간 딸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그런 딸을 잃은 억울함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씨의 빈소에는 이제 혜진이의 어머니 이달순 씨와 오빠, 언니가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딸이자 동생인 혜진이를 잃은 슬픔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남편이자 아버지까지 떠나보냈다. 덩그러니 빈소 앞에 놓인 화환만이 딸의 곁으로 간 아버지 이 씨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었다.

유괴살해는 이렇듯 극악한 범죄이며, 피해가족에게는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상처를 남긴다.

어느 부모라도 이런 범죄로 자식을 잃는다면 혜진이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재간이 있을까. 이런 유괴범죄의 발생을 원천 차단할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그런 이유다. 전 국민이 애태우며 경찰이 뛰어난 수사력으로 범인을 찾든지, 범인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아이를 돌려보내든 납치된 아이가 부모품으로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했던 사건이 얼마나 많았나. 하지만 아직도 많은 아동이 짐승같은 범죄자의 손에 희생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2만명 이상의 아동이 실종신고되고, 20~500여명이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해의 경우 564명의 아동이 결국 실종됐다.

‘제2의 혜진이’ ‘제2의 혜진이 아버지’가 우리 주위에서 아직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유괴는 돈을 노렸든, 원한 때문이든 반사회적ㆍ반인륜적 범죄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를 무너뜨리고, 가정을 파괴해버린다. 피해자는 아동에 그치지 않고, 그 가족과 지인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충격과 공포가 남는다. 가슴이 숯덩이가 된 채 딸의 곁으로 떠난 혜진이 아버지 같은 비극이 더이상 나오지 말아야 한다.

김성진 기자/withyj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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