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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60대 · 3년 임기…대한민국 사외이사의 표준
헤럴드경제| 2014-03-14 12:05
30대 그룹 사외이사 597명 분석
낙하산 논란 배제·전문성 인정
학계 3명 중 1명꼴 최다 분포
권력기관 출신도 37.8% 높은 비중

60대, 교수 출신, 평균임기 3년. 국내 30대그룹 사외이사들의 평균치다. 하지만 10명 중 3명은 청와대를 비롯한 고위관료, 검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이른바 힘 있는 권력기관 출신이다.

이들 사외이사의 상당수는 그룹 총수와 인맥이 있거나, 해당 회사와 관련 있는 일을 한 경험이 있었다. 이러다 보니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대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가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왜곡됐다는 지적이 많다.


▶학계ㆍ60대ㆍ36개월=14일 본지와 기업경영성과평가업체 CEO스코어가 30대그룹 상장사 및 그룹 주요 비상장사의 사외이사 597명을 분석(2013년 6월 30일 기준)한 결과 ‘학계’ 출신이 193명, 비중으로는 32.33%로 가장 많았다. 학계 출신은 낙하산 및 권력기관 줄대기라는 사회적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운 데다 전문성까지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겸직이 쉬워 학계에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학계 다음은 재계다. 115명으로 19.26%를 차지했다. 현장 경험이 있어 경영활동과 관련된 안목을 가졌다는 게 장점이다. 특히 성공한 전ㆍ현직 CEO 출신들의 경우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학계나 재계 출신도 자세히 살필 필요가 있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일부 인사는 이력을 살펴보면 특정 협회 회장이라든지, 직ㆍ간접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지적했다.

연령대는 60대가 330명(55.28%)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50대 189명(31.66%), 70대 51명(8.54%), 40대 22명(3.69%), 80대 5명(0.84%) 순이었다. 40대는 주로 국내외 변호사 및 컨설팅업체 출신이 많았고, 나이가 많을수록 전직 CEO 등이 주류를 이뤘다.

임기는 모두 다르지만 평균 36개월을 일했고, 재선임 횟수는 1.81회인 것으로 조사됐다. 사외이사 가운데 감사위원의 비중은 21.94%, 감사위원과 사외이사를 겸하는 경우도 16.92%로 집계됐다.

▶법조ㆍ관료ㆍ공정위 등 권력기관 출신 수두룩=관료, 법조, 공정위, 국세청 등 이른바 ‘권력기관’ 출신은 총 226명으로 37.86%의 비중을 차지했다. 세부적으로는 법조(98명ㆍ16.42%), 관료(101명ㆍ16.92%), 공정위(18명ㆍ3.02%) 등이다. 이들의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는 인정할 만하지만, 역으로 정부에 대한 접근 및 로비의 창구로 활용될 여지도 크다.

특히 CJ그룹의 경우 9개 상장계열사 사외이사 26명(작년 10월 CEO스코어 발표) 가운데 관료 출신이 16명으로 무려 61.5%에 이른다. 지주회사인 CJ가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을, CJ제일제당은 김갑순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선임하는 등 지난해에만 고위관료 출신을 5명이나 영입했다. CJ는 최근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공금 횡령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와 특별세무조사를 받았다.

최근에도 삼성생명과 SK가스가 박봉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을, SK텔레콤이 이재훈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을, LG가 윤대희 전 대통령 경제정책수석비서관을, SK네트웍스가 허용석 전 관세청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했거나 선임할 예정이다.

최근 재벌닷컴이 올해 10대 재벌그룹 주주총회의 사외이사 선임안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정부 고위관료(청와대 포함)를 비롯해 국세청, 공정위, 금감원, 사법당국 등 소위 권력기관 출신이 46명으로 전체의 36.5%에 이르렀다.

▶행동 않는 사외이사, ‘거수기’ 비판 자초=최근 사외이사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늘고는 있다. 그래도 국내 대기업들의 사외이사에는 ‘예스맨’ ‘방패막이’ ‘거수기’ ‘로비스트’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지난해 사기성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발행으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동양그룹의 경우 사외이사들은 지난 2009년부터 작년 6월까지 그룹의 주요 현안이 걸린 안건에 대해 239차례나 찬성했으나 반대 의견은 한 번도 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박 대표는 “사외이사는 사내이사인 경영진을 감시하고 주주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본질적 측면에서 국내 대기업들의 사외이사는 왜곡된 측면이 많다”고 강조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이지수 변호사는 “상법 개정을 통해 소액주주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의결권 3%로 제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이스라엘에서는 소액주주 1명을 사외이사에 강제 배정해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대연 기자/sonamu@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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