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멍청한 은행과 당국이 방치한 ‘대출사기 공화국’ 백태
뉴스종합| 2014-03-19 10:29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지난해 12월 3900억원대 수출입금융 사기대출범 변인호가 국내에 송환됐다. 1998년 어느날 검찰 기자실을 분주하게 만들었던 희대의 사기꾼이다. 그는 유령회사를 세운 뒤 가짜 수출 신용장을 작성해 은행 등에서 3941억원을 대출받아 가로챈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변씨는 1999년 항소심 재판을 받던 중 위조 여권을 통해 중국으로 도주했다.

변인호는 당시 한국과 수출상대국의 수출입 금융기관, 수출입 보험기관, 무역 관련 당국 모두를 속였고 국내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이 확정됐었다. 그의 사기행각은 재판중 도주범 신분으로 중국현지에서도 계속됐다. 중국법원은 그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법무부는 중국 감옥에 잡혀있던 변씨에 대해 국내 법절차 상 매듭지을 것이 있어 ‘임시 인도’방식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가 역대 최강 금융사기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금감원 간부까지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KT자회사 사기대출사건은 총액면에서 단군이래 최대규모일 것 같다. 갚은 돈을 제외한 실제 피해액은 3000억원이지만, 부당 대출 총액은 무려 1조8000억원이다.

기업 신용이 있고, 금융감독 당국의 입김만 가해지면 무턱대고 돈을 내주는 관행이 고쳐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유사한 사태는 발생할 수 있다. 은행의 지나친 ‘특정고객’ 신뢰 관행 때문에 은행까지 의심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지난달 시티은행도 대기업 간판만 믿고 돈 내줬다가 사기를 당했다. 한국씨티은행은 디지텍시스템스 임원이 위조한 매출채권을 믿었다가 1700만달러(약 180억원)의 피해를 보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은행측은 디지텍시스템이 대출신청 서류에 자신들의 납품처라고 적히 KT와 삼성전자의 스펙을 과신해 여신심사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삼성은 당시 매출채권의 문제점을 발생하고 은행측의 지급요구를 거부했다.

어처구니없게도 대기업과 큰 은행들이 들먹여지는 대출사기가 빈발하니, ‘아랫쪽’에서는 서민들을 등치고, 어수룩한 은행을 속여먹는 갖가지 대출사기가 난무한다.

경찰은 지난해 9월 아파트 월세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알아낸 집주인의 개인정보로 주민등록증을 위조, 가짜 집주인 행세를 하며 200억원대 전세자금 담보대출 사기를 벌인 일당 14명을 검거했다. 이들의 사기 행각으로 집주인은 금융사의 가압류 등 불편을 겪었다.

전세 가격 폭등으로 금융권에서 전세자금 대출 한도가 높아진 점을 노린 전형적인 지능사기였다. 지방은행이나 신용협동조합 등 다소 허술해 보이는 금융기관을 노렸다.

일당 중 주범은 2011년부터 강남 강북지역에서 같은 수법으로 170억원대의 사기를 저지른 전문 부동산 사기꾼이었는데 또 활개를 치도록 방치한 것은 당국의 책임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에는 솔로몬저축은행으로부터 890억원대 대출을 받아낸 뒤 갚지 않은 건설업체 대표가 1년여의 도피 끝에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광주 호남지역 유력인사에게 로비를 시도, 대출 과정에서 혜택을 받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중고 차량을 매개로 억대의 불법 대출을 받거나, 교통사고로 크게 파손된 외제차량을 담보로 제2금융권에서 억대의 대출을 받아 달아나는 사기행각도 빈발한다. 수출서류를 조작해 거액의 불법대출을 받을때 이름을 빌려준 노숙자가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사기공화국.’ 윗물이 탁하니 아랫물이 맑을 리가 없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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