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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책임 전가 대상된 ‘원자력방호방재법’
뉴스종합| 2014-03-20 11:15
[헤럴드경제=박도제 기자]누구의 잘못일까? 생산부 A부장은 퇴근길에 평소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수출부 B부장의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마케팅을 총괄하는 C부장은 이틀 뒤 외부 업체와 시장 협력 회의를 해야 하는데, 관련 시장 분석 보고서가 내일까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협조 요청을 받게 된 A 부장은 사전에 아무 이야기도 없다가 갑자기 보고서를 요청하는 경우가 어디있냐며 따져 물었다. 급한 감은 있었지만, 예전에 한 번 다뤘던 내용이어서 문제될 것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 B 부장은 A 부장의 반색과 비협조적인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다.

상황이 급해지면서 C 부장은 아침 일찍 관련 내용의 중요성을 A 부장과 B부장에게 호소했지만, 평소 사이기 좋지 못한 이들은 남 탓 하기에 바빴다. A 부장은 갑작스러운 협조 요청을 한 것은 B 부장은 잘못이라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고, B 부장은 갑작스러운 요청이라는 A 부장의 주장은 발목잡기라고 버텼다. 특히 A 부장이 협조의 전제 조건으로 생산 인력 증원에 B 부장도 협조할 것을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발목잡기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원자력방호방재법 개정안 처리를 놓고 여야간 책임 공방도 이와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다. 여당에서는 닷새 뒤 해외 순방에 나서는 대통령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원자력방호방재법을 처리해야 하는데, 야당이 관련없는 다른 법안 동시 처리를 주장하는 등 발목잡기를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은 사전에 일언반구도 없다가 갑자기 법을 처리를 요구하면서 야당을 국정 걸림돌로 오해받게 만드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누구의 책임이 클까? 먼저 관련법안을 제출한 정부가 사전에 법안 처리 일정 등을 챙기지 못한 탓이 크다. 원자력방호방재법은 지난 2012년 8월 정부가 발의한 내용이다. 2011년 말 국회가 관련 내용을 비준한 까닭에 법안 내용이 문제될 것은 없었다. 법안 처리 과정을 더욱 꼼꼼히 챙겼어야 했다. 이런 점에서 C 부장은 최종적인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전병헌 원내대표는 2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방호법 처리가 국격과 나라 체면 걸린 문제라면 대통령부터 정부 태만 질책하고 국회 협조 요청해야한다”고 꼬집었다.

여당도 책임있는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점에서 책임 소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관련 법안 처리가 급하면, 야당을 설득해야지 압박해서는 안된다. 국무총리를 대동하고 공개된 자리에서 야당이 협조하지 않아 몇일 뒤 해외 순방에 나설 대통령이 체면을 구기게 된다는 이야기에 협조할 야당은 아무곳에도 없다. B 부장은 C부장과 함께 A 부장에게 술한잔 사면서 사안의 중요성을 알리고 협조를 구해야 했다. 하지만 여당에서는 야당에 대한 압박 강도만 높이고 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핵안보 정상회의 위한 통 코앞에 닥쳤다”면서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작년 정기국회 때부터 원자력 안전법 함께 방호방재법 최우선 두고 협상해 왔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야당 역시 국정 운영의 파트너라는 점에서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특히 여당의 접근 방법에 아쉬운 점이 있지만, 다른 조건을 내걸어서는 안됐다. 원자력방호방재법안 자체가 문제가 없고 국가에 필요한 내용이라면 처리에 협조해야 한다. 국가적으로 필요한 내용인데, 관련성이 없는 내용으로 협조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더욱 커질 것이다. 야당은 새누리당 최 원내대표가 “지금은 국격 지키고 어르신 생계 보살피는데 여야 함께 통큰결단해야 한다”며, “작은 당리당략 고집 매몰돼 있을 때가 아님을 민주당은 각성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전혀 틀린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pdj2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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