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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청와대 행진이 선동? 19~20일 무슨 일이 있었나
뉴스종합| 2014-04-22 10:50
[헤럴드경제=김성훈(진도) 기자]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청와대 행진이 불순 세력의 선동에 이끌린 것이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경찰이 내사에 착수했다. 일부 언론들은 해당 의혹을 제기하는 가족들의 인터뷰를 전하며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지만 근거는 뚜렷하지 않다.

청와대로 가서 항의를 하자는 주장이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은, 실종자 생존의 마지노선으로 알려진 침몰 후 72시간이 지나고 나서부터였다. 실종자 가족들은 세월호 선체를 인양할 것인지, 실종자 수색을 계속할 것인지를 놓고 논의했다. 하지만 실종자 생존 가능성이나 선체 인양 과정 및 문제점 등에 대해 뚜렷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가족들은 쉽게 결정내리지 못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 측에 관련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전문가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제대로 된 전문가를 보내주지 않았다. 이에 사고 수습 과정에서 정부의 무능한 대응에 대해 품고 있던 불만이 폭발했다.

19일 밤 10시 무렵 진도 팽목항에 나가 있는 가족들 대표로부터 진도실내체육관 대표 측으로 연락이 왔다. 팽목항 쪽 가족들은 청와대로 가서 항의하기로 결정했으니 동참할 지 여부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체육관 대표는 단상에 올라 가족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동참 여부를 결정하자며 (안산단원고) 각 학급 대표들은 단상 앞으로 나와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체육관의 가족 대표단은 쉽게 결정 내리지 못했다. 논의를 하는 중간중간에 체육관 내 이곳저곳에서 가족들 간의 싸움이 일어나면서 이를 말리느라 제대로 논의를 해볼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체육관 쪽 가족들은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세월호 탑승자와 구조자 인원 파악도 제대로 못해 수차례 틀리는가 하면 수차례 잘못된 발표를 내 혼선을 빚었다. 제대로 된 사실 확인 없이 정부 발표만 믿고 경마식ㆍ받아쓰기식 보도를 한 언론들도 덩달아 오보를 연발했다. 가족 중 한 명은 “우리 쪽 얘기는 하나도 안 다루고 정부 얘기만 보도하는 언론은 믿을 수 없다”며 체육관 내 TV 방송을 꺼버리는가 하면, 다른 가족은 기자들의 카메라를 부수며 분노를 표출했다.

게다가 체육관 내부에 있는 가족들 서로 간에도 의심이 번져갔다. 세월호 침몰 사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다른 목적을 갖고 잠입한 외부인이 있다는 의심 때문이었다. 이미 “민간잠수부를 사칭해 ‘실종자를 찾아올테니 1억원을 달라’고 한 사람이 있었다는 취지의 보도가 나간 상태였다. 한 실종자 가족은 “자신을 청와대 직원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다가와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날 수 있게 해줄테니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며 “경황이 없어서 하마터면 속을 뻔 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한 남성은 “여기 지금 사기꾼, 프락치 천지다”라고 말했다. 한 여학생은 자신을 뒤따라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던 남성에게 “당신 누군데 내 뒤를 졸졸 따라오냐. 스파이냐?”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고, 한 중년 여성은 자신과 눈을 마주친 다른 이에게 “왜 날 쳐다봐? 당신 신분이 뭐야?”라고 물었다. 가족들은 이미 ‘진짜 가족’과 ‘가짜 가족’을 색출하기 위해 신분 확인용 명찰까지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일부 언론들은 가족을 사칭한 외부 세력 가운데 일부가 불순한 목적을 갖고 청와대 행진을 선동했다는 듯한 뉘앙스로 보도했지만, 당시 가족 대표들의 생각은 달랐다. 청와대 행진을 논의하기 위해 단상 앞으로 나온 가족 대표 중 한 명은 “외부 세력이 자꾸 소란을 일으켜서 유족들이 합의를 못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유족들 논의가 유야무야 된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며 답답해 했다.

실제 이전에도 가족들끼리만 모여 가진 회의에서 한 정보과 형사가 사복 차림으로 몰래 들어와 있었던 것이 발각돼 쫓겨나기도 했고, 청와대 행진 여부에 대한 토론 과정에서도 한 지방경찰서의 임모 정보과장이 가족들에게 붙잡혀 신분과 정보보고 내용을 확인하는 등 소동을 빚었다. 가족 대표들은 청와대 행진이 경찰의 정보보고로 이미 정부 고위층까지 올라갔음을 짐작하고 아쉬워했다. 경찰이 가족들의 청와대 행을 막기 위해 버스를 모두 가로채갔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외부 세력이 청와대 행진을 선동한 것이 아니라, 외부 세력이 청와대 행진을 가로막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 이미 팽목항 쪽 가족들은 청와대로 향했다는 소식이 체육관에 전해졌다. 체육관 쪽 가족 대표 중 일부는 “뭉쳐서 다 함께 가야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일단 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들만 청와대로 가는 것으로 합의됐다.

20일 자정이 넘은 시각 청와대로 가겠다고 나선 가족들이 체육관 밖에 학급별로 줄을 서서 모였다. 가족 대표단을 비롯해 대부분 실종자 가족 신분임을 알려주는 명찰을 목에 건 40~50대의 중년 남성들이었다. 한 방송이 내보낸 “실종자 가족도 아니고 단원고 학생도 아닌 젊은 학생들이 선두에 서 있었다”는 주장과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서울로 가기 위해 탈 버스를 구하지 못하면서 출발은 계속 늦어졌다.

새벽 1시 20분 무렵, 청와대로 향하겠다고 모인 가족들을 만류하기 위해 새누리당 소속 김명연 국회의원(경기 안산 단원구갑)이 송정근 목사와 함께 찾아왔다. 김 의원은 국무총리가 나와주기를 요구하는 가족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고, 대신 범부처 사고대책본부장인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의 만남을 주선하기로 약속했다. 가족들은 이 장관이 오면 얘기해보겠다며 일단 청와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청와대로 향한 가족은 100여명이 조금 넘는 규모였다. 체육관에 남은 가족들이 더 많아 보였다. 경찰은 청와대로 향하는 가족들을 막기 위해 앞질러 뛰어가 길목에 인간바리케이드를 치고, 채증도 하기 시작했다. 가족과 경찰 간에 몸싸움이 일어났다.

새벽 1시 41분 이 장관이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도착한 이 장관은 한 트럭의 화물칸에 올라 가족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가족들은 대화를 하는 대신 “경찰을 철수시켜 달라”고 요구했고 이 장관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대화는 소득 없이 끝났다. 혼란의 상황에서 가족들의 요구가 엇갈렸기 때문이었다. 일부 가족들은 크레인 인양을 빨리 해줄 것을 요구했고, 다른 가족들은 “내 자식 살려내라”고 소리쳤다. 이 장관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지만, 유족들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양립불가능한 요구를 절충할 수 없었던 이 장관에게는 “장관도 파리 목숨이지, 무슨 힘이 있냐”는 냉소가 쏟아졌다. 정부의 책임있는 대표가 나와줄 것을 요구한 가족들에게 이 장관은 자신이 책임자라고 설명했지만, 가족들은 코웃음쳤다. 결국 이 장관도 정홍원 국무총리를 만나게 해줄 것을 약속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새벽 2시 46분, 차로 10분도 안되는 거리의 진도군청에 있었던 정 총리가 가족들이 면담을 요구한 지 2시간만에 나타났다. 하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정 총리와의 대화 역시 자꾸 공전됐다.

정 총리와 가족들이 답답한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던 새벽 3시 30분 체육관에 남아 있던 가족들이 “정부측은 각성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몰려나왔다. 처음 출발한 이들이 중년 남성 위주였다면, 이번에 합류한 이들 중에는 학생들이 많았다. 대화를 포기한 정 총리는 급히 차로 피신했다. 가족들은 총리가 떠나지 못하도록 차를 에워쌌다. 차 주변은 “우리 자식 좀 살려달라” “청와대로 가서 하소연할 수 있게 길 좀 열어달라”는 가족들의 애원으로 들끓었다. 가족들의 소리가 차 안에도 들리는지… 총리는 팔짱을 끼고 창문을 두드리는 가족들의 시선을 외면했다. 총리의 수행원으로 보이는 이는 피곤한 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점점 지쳐갔다. 총리에게 애원하다 실신해 실려간 여성이 있는가 하면, 팽목항에서 출발한 가족들이 진도대교 인근에서 경찰에 막혔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그 중 일부는 지쳐 쓰러졌다는 소식도 함께.

새벽 5시20분, 가족 중 일부가 ‘진도대교 쪽에서 멈춰 있는 가족들을 차로 싣고 와주면 총리를 보내주겠다’고 경찰과 합의를 했다. 하지만 팽목항 쪽 가족들은 총리 면담을 요구하며 경찰이 보내준 차를 타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아침 6시 5분, 총리가 탄 차를 둘러쌌던 가족들이 물러났고 총리는 체육관을 떠났다. 가족들은 총리의 차가 돌아가는 것을 흘깃거리며 다시 체육관 쪽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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