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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로가 막히니 나라가 한순간에 와르르”…‘후한서 본기’ 첫 완역 민음사 장은수 대표
라이프| 2014-05-23 07:56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후한을 건국한 광무제가 천하를 얻을 때 보여준 것은 대의와 포용, 그리고 기다림의 리더십이었습니다. 그런데 후한은 짧은 번영을 누리고 200년만에 망했습니다. 후한말 환관, 외척이 장악한 황실은 당고라는 이름으로 비판적인 선비들을 제자, 가족, 친척 명단까지 만들어 벼슬길을 봉쇄하고 철저하게 탄압했습니다. 언로가 막힌 것이죠. 언로가 막히니 ‘중화’라고 칭했던 거대한 시스템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우리가 후한의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후한을 건국한 광무제 유수는 원래 지방의 호족으로 한량들과 어울려 놀기를 즐겨한 사람이다. 전한 멸망 후 세워진 왕망의 신나라 말기, 광무제 유수의 형 유인은 지방에서 일어난 경시정권의 신하로 있었으나 사람이 너무 똑똑한 탓에 정적의 모함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광무제 유수는 복수 대신에 형을 죽인 황제에게 무릎을 꿇었다. 당장은 신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이 사사로운 복수보다는 중요하다는 대의가 먼저였고, 자신이 충분한 힘을 기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판단이 두번째였으며, 천하를 얻기 위해선 원수까지도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이 세번째 이유였다. ‘후한서 본기’를 국내 첫 완역한 민음사 장은수 대표(46)는 ‘대의와 포용, 기다림의 리더십’을 책이 주는 교훈의 으뜸으로 꼽았다. 그것이 후한의 건국사가 주는 메시지라면 짧은 멸망사는 ‘언로가 막히면 나라가 망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보여준다고 장 대표는 말했다. 

장은수 민음사 대표 인터뷰.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범엽의 ‘후한서 본기’는 광무제가 득위한 25년부터 위ㆍ촉ㆍ오가 패권을 다툰 삼국지 시기를 거쳐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가 위나라의 조비(조조의 셋째 아들)에게 황위를 내준 220년까지의 중국고대사를 기록한 책이다. 중국에서는 ‘사사’(四史) 중 하나로 꼽히며 고려와 조선에선 왕실과 선비들의 필독서이기도 했다. 동아시아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지만 국내에선 완역본이 없었다. 민음사 장은수 대표는 오랜 동안 편집인이자 문학평론가로 출판계에 몸담아왔지만 전문 번역가는 아니었다. 개인적인 호기심이 발동해 원문의 글귀 하나씩 풀이해 블로그에 올리던 것이 계기가 돼 아예 완역에까지 이르렀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출판사가 아닌 새물결에서 그 결과를 출간한 점도 이채롭다. 장 대표를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제 세대의 남자들이 흔히 그렇듯 저 또한 어린 시절부터 ‘삼국지’(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읽었죠. 그리고 지난 2007년엔 김원중 선생이 번역한 진수의 ‘정사삼국지’가 출간됐습니다. ‘삼국지연의’는 촉한정통론으로 유비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고, ‘정사삼국지’는 위나라의 조조가 주인공입니다. 두 사관이 충돌하죠. 그래서 그 시기를 다룬 또 다른 역사서는 당대를 어떻게 묘사할까 궁금해 ‘후한서’에 관심이 갔습니다. 우리말 완역본이 없어 한자 한자 풀이하며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돼 전부를 번역하게 됐습니다. 다른 출판사에 계시던 선배가 제 말씀을 듣고 책을 내도 되지 않을까 제안을 해서 출간까지 이뤄졌습니다. 출판은 공공성이 있어야 되니까,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아니라 다른 출판사에서 내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저자 범엽의 글과 사관은 엄정하고 유려한 것으로 정평이 났다. 예를 들어 위의 조조와 오의 손권에겐 ‘스스로 자 自’를 써 ‘스스로 황제가 됐다’고 묘사한 반면, 촉의 유비가 황위에 오르는 과정을 기록할 때는 이 글자를 쓰지 않았다. 범엽은 유비만을 정통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후한 때는 지방에서 용이나 봉황이 나타나면 길조로 여겨 황실에까지 전했는데, 똑같은 보고를 놓고도 정치가 잘 될 때는 “실제로 나타났다”는 ‘사실’로 기록하고, 정치가 타락한 후에는 ‘나타났다는 말이 올라왔다(上言)’는 ‘소문’으로 썼다. 한 자 한 자 그냥 지나침 없이 시대상과 역사관을 응축시킨 것이다. 


장 대표는 “중국이나 우리 고대 역사서의 좋은 번역은 2, 3차 창작물을 파생시키는 콘텐츠 산업의 근간”이라며 “조선왕조실록의 번역이 없었으면 TV나 영화에서 그 많은 사극이 만들어질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학계에선 번역을 낮게 평가하고, 민간에선 역량이 모자라니 아직도 해야될 작업이 많다”며 “공적인 지원과 학계의 문호개방, 전문번역사의 육성 등을 통해 역사를 일반인들이 접근 가능한 지식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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