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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관상으로 6년간 250억원 번 ‘현대판 백락(伯樂)’
뉴스종합| 2014-06-27 07:05
-마사회 김영관 조교사, 업계 ‘루저’ 설움딪고 대박

[헤럴드경제=윤정희(부산) 기자] 사람과 마찬가지로 말에게도 관상이 있다. 말의 생김새를 보고 얼마나 좋은 말이 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상마(相馬). 이처럼 말의 관상을 보고 경주마로서의 자질을 판단해 역대 최고의 명마들을 줄줄이 탄생시켜온 현대판 백락(伯樂ㆍ역사적으로 상마를 잘했던 인물로는 중국 춘추시대에 살았던 백락을 꼽을 수 있다. 백락일고(伯樂一顧)라는 고사성어로도 유명하다)이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한국마사회 렛츠런파크(구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영관(54세) 조교사.

그가 발굴해낸 명마 중 단연 으뜸은 절름발이 경주마 ‘루나’다. 경주마에게 치명적인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이름없는 말을 관상을 통해 발굴해낸 것이다. 이외에도 김영관 조교사의 마방에는 내로하는 거물급 경주마가 적지 않다. 2009년 삼관경주를 휩쓴 ‘상승일로’, ‘남도제압’, 지난해 대통령배와 그랑프리를 제패한 ‘인디밴드’, 최강 여왕마 ‘감동의바다’ 등 하나같이 걸출한 말이다. 한국경마 최다연승을 보유하고 있는 ‘미스터파크’도 김영관 조교사가 길러낸 경주마다.

“말의 관상을 보고 원석 같은 경주마를 발굴해 경마장의 다이아몬드로 만들어냅니다. 경주마는 혈통이 능력의 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다음으로 중요시되는 것이 말의 관상이죠. 뛰어난 경주마는 콧구멍은 넓고 커야 하며, 가슴은 두껍고 등은 짧고 어깨가 튼튼하고 또 체형은 균형과 대칭성이 있어야 합니다.”

김 조교사가 발굴해 부산경남경마공원 개장 초기에 활약했던 경주마 ‘루나’는 선천적인 장애로 인해 역대 최저가인 970만원에 낙찰됐다. 장애 탓에 ‘절름발이 경주마’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2005년, 2006년 경상남도지사배와 2007년 KRA컵 마일, 2008년 오너스컵 등 매년 억대의 상금이 걸린 큰 대회를 석권했다. 그렇게 해서 거둔 상금은 무려 7억2000만원. 몸값의 74배에 달하는 액수다. 2011년엔 루나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차태현 주연의 영화 ‘챔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김 조교사가 관상을 통해 발굴해낸 명마들이 지난 6년간 527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며 상금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모두 250억원에 달한다. 유독 뛰어난 경주마를 발굴하는 능력 탓에 한국경마 100년 역사의 내로라하는 서울경마공원 조교사들을 따돌리고 6년 연속 통합 상금왕(2007년~2013년)을 차지했다. 관상으로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원석 같은 경주마를 발굴해 보석으로 만들어내는 김 조교사의 탁월한 능력이 이뤄낸 결과다.

김 조교사의 상마 능력은 자신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다. 1976년 기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체중조절 실패로 마필관리사로 전향했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마필관리사 시절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다. 자신만의 마필관리 노하우가 있었지만 조교사의 지시를 받아 일하는 관리사로는 자신만의 마필관리철학을 펴내기 어려웠다. 수차례 마찰을 빚어왔고 결국 미운털이 박힌 그는 외톨이가 되고 만다. 이른바 관리사 업계에서도 ‘루저’로 전락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기회가 왔다. 2003년 부경경마공원 개장을 앞두고 조교사로 개업, 자신만의 마필관리 노하우를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됐다. 그 즈음 김영관 조교사는 운명처럼 ‘루나’라는 희대의 명마를 만난다. 그간 인정받지 못했던 설움을 한방에 날려 보내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조교사로 전향한 김 조교사에게 루나는 각별했다. 장애를 가진 몸으로도 경주에 나서면 끝까지 달리는 루나의 모습에 김 조교사 역시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김영관 조교사는 “다리가 너무 아파 눈물이 고일만큼 아파도, 루나는 절대 포기 없이 어떻게든 결승선을 통과했다”며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고맙고 또 삶의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경마계에 완벽주의자로 소문난 김 조교사지만 지금도 제주를 찾을때면 남몰래 루나가 있는 목장을 찾곤 한다. 스펙이나 인맥으로 판단받는 세상의 편견을 눈물로 함께 이겨내온 루나가 너무나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cgn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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