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허연회 기자]“교수들만 살판 났네…”
정부 모 부처 장관은 최근 사석에서 기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 분위기 속에 고위직 공무원들의 산하 공공기관 진출이 원천 봉쇄되면서 대학 교수들이 대거 이들 자리를 꽤 찰 것으로 우려된다는 얘기였다. 그는 “학생들만 가르치며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교수들이 자칫 정부부처 산하 공기업, 산하기관 등을 더 망쳐놓을 수 있어 걱정”이라는 고민도 털어놨다.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관피아 척결’이 사회적인 화두로 자리잡으면서 정부 산하 기관장 후보군에서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관피아의 낙하산 인사가 원천봉쇄되면서 그 자리를 대학교수들이 대체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 일각에서는 정치권을 기웃거리다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폴리페서’처럼 공공기관(public institution) 기관장으로 재임하다 대학으로 돌아오는 ‘퍼블릭페서’가 대거 등장할 것으로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실제로 최근 진행되는 정부 산하기관장 공모에서 관련 부처 차관은 물론 1급 공무원들의 낙하산 인사가 배제되면서 이 자리에 대학교수들이 대거 지원을 하고 있다.
일례로 최근 기관장 공모를 했던 정부부처 산하 공공기관의 경우 전체 지원자 중 3분의 1 가량이 교수 출신이었으며, 이들 가운데 교수 출신 인사가 최종 3명 후보군에 포함됐다. 해당 공공기관 관계자는 “교수 출신 후보자는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며, “기관 설립 30년만에 처음으로 교수 출신 기관장이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는 다른 공공기관이나 준정부기관 등도 비슷하다.
일부 전문성을 요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기업의 경우는 내부 승진을 통해 이미 산피아(산자부+마피아) 출신 고위 공무원들의 낙하산이 막혀 있는 상황이지만, 전문성이 크게 필요 없는 공기업의 경우는 교수 출신 인사들의 지원이 줄을 잇고 있다.
교수들의 진출 영역 확대와 달리 관피아 척결 분위기 속에 정부부처 차관이나 1급 고위직 공무원은 갈 길을 잃고 떠돌고 있다. 자녀의 대학 학비 등을 고민해야 하는 50대 초중반의 이들이 지방권 대학의 교수직을 기웃거리고 있다는 웃지 못할 소식도 들린다.
이번에 옷을 벗어야할 처지에 놓인 모 부처 실장은 “그래도 평생 공직생활을 하며 국가에 봉사해 왔는데, 이런 푸대접을 받고 보니 헛웃음만 나온다”며 “후배들 눈치에 더 있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바로 퇴직하면 할 일이 없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1급 공무원은 “이러다 자칫 실장이 직업이 되면 어떡하냐”며 “관피아 문제도 문제지만 퇴로도 없이 공무원들을 내쫓는 분위기는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시에서 만난 한 고위 관료는 “공무원들이 대거 낙하산으로 내려가는 것도 문제지만, 수십년 동안 공직 생활을 하며 쌓은 경험을 단순히 낙하산, 관피아 등의 이유 만으로 막는다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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