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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앵그리맘 기획] 신앵그리맘 폭발사회, 기로에 선 대한민국
뉴스종합| 2014-08-11 10:12
[헤럴드경제=이지웅 기자]집안에만 머물 수 없었다. 그래서 박차고 세상 밖으로 뛰쳐 나왔다. 그리고 외치고 있다.“내 아이를 지키고 싶다고.” 그들은 우리 사회의 ‘엄마들’이다.

세월호, 군 폭력과 사망 등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사건ㆍ사고가 올 들어 연이어 터지면서 대한민국 엄마들이 분노하고 있다. 안전불감증에서 허우적거리며 소중한 우리 젊은이들, 작게는 ‘내 자식’ 목숨을 앗아가는 말도 안되는 사고가 도미노처럼 생기면서 엄마들이 뿔난 것이다.

그래서 세상 밖에 나왔고, 거리에 나섰다. 비상식적인 사건ㆍ사고가 판치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이를 제대로 봉합하지 못하고 근원책도 내놓지 못하자 ‘맘(Mom)들의 결집’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도 앵그리맘은 있었지만, 집안에서만 분노했다는 점에서, 세상 밖으로 나와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은 그래서 ‘신(新)앵그리맘’으로 불린다.

원래 ‘앵그리맘’은 세월호 참사에 희생된 안산 단원고 고등학생들과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둔 40대∼50대 전후의 엄마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군대 내 사망 사고가 계속 터지고, 6ㆍ4 지방선거에서 정부와 여당에 대한 뚜렷한 반대 표심을 나타내 교육감 선거를 좌지우지한 이들이 ‘엄마들’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앵그리맘은 ‘위험한 대한민국’에 자식을 낳은 죄로 불안에 떨어야만 하는 전연령대의 대한민국 엄마를 가리키는 상징처럼 됐다.

최근 일련의 사건ㆍ사고 수습 국면에서 무능하고 나태한 모습만을 보여준 정부와 정치권을 규탄하는 현장에는 늘 엄마들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서울 광화문 광장을 비롯해 전국에서 개최된 침묵시위ㆍ촛불시위의 인파 속에는 ‘시위꾼’이 아닌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이 주력 부대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을 하고 있는 가운데 한 아이가 엄마가 지켜보는 가운데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라는 메시지를 쓰고 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세월호 침몰 사고로 만들어진 인터넷 포털사이트 카페 ‘엄마의 노란 손수건’에는 11일 현재 회원수가 8900명에 육박한다. 이날 오전에는 ‘82엄마당’, ‘분당맘’, ‘판교맘’ 등의 이름을 단 ‘앵그리맘’들이 국회 앞에 모여 세월호 유족들의 요구를 외면한 여당과 야당의 특별법 제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 뿐 만이 아니다. ‘자식을 지키기 위한’ 엄마들은 카페 개설, 모임 신설 등으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겠다고 속속 결집하고 있다. 지난 5월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진실을 밝혀라’라는 제목의 광고를 게재한 이들도 엄마들이었다.

분명 예전의 엄마들과는 다른 양상이다. 집안에 갇혀 있던 주부들이 세상을 자각하는 것은 긍정적이라는 시각이다. 맘(Mom)도 세상 변혁의 한 주축이라는 것이다.

다만 앵그리맘의 태동과 거센 물결이 안전불감증 사회와 무관치 않다는 점에서 이들의 분노와 싸늘한 시각은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앵그리맘의 파워가 건강한 사회집단화에 일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앵그리맘’의 대대적인 출현은 정상적인 국가 시스템이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한다. 정치권이 국민적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정부는 사태 해결에 무능력하다는 증거라는 뜻이다.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아빠들은 앵그리 하지 않느냐고 묻지만 그것이 아니다. 지금 현상은 아빠들도 앵그리를 했지만 엄마들까지 앵그리를 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1980년대 대학생들이 데모하다가 경찰서에 끌려갔을 때 이들을 꺼내올 수 있는 사람은 어머니와 할머니 뿐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었다”며 “이것은 모성애의 상징인 어머니와 할머니가 체면을 가리지 않고 내 자식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공권력에 항의도 하고 사정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도 마찬가지로 내 가족의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엄마들이 자신의 몸을 던져 거리로 나서게 된 것”이라며 “이는 정부와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해주었다면 당연히 벌어지지 않았을 현상이라는 점에서 역동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서글픈 현상”이라고 했다.

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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