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교황은 ‘메시아’ 아닌 ‘메신저’
헤럴드경제| 2014-08-14 11:48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한국 땅을 밟았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가 알이탈리아 항공 전세기에서내리자마자 땅에 입맞추는 파격적인 의식으로 교황의 첫 한국 방문을 알렸던 역사적인 순간으로부터30년만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9년에 한번 더한국을 찾았으니 잘 알려진 것처럼 교황의 방한은이번이 세번째다.

개인적으로는 십대 중학생이었던 1984년 당시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에 관해서는 이 장면과 함께 떠오르는 또 다른 기억이 있다. 종로 인근의학교를 다녔던 탓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청와대 방문 길에 태극기를 흔들러 광화문에 동원됐던기억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훌륭한 인품이나행적과는 별개로, 마지못해 끌려나와 거리에 도열했던 십대 중학생의 어린 마음은 지금 돌이켜도 유쾌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과연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자신을 환영하기 위해 어린 학생들이 동원되기를 바랐을까?

그후로 30년. 오늘에야 누가 억지로 시키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도 따를 사람도 없겠지만 그저 먼 발치에서만이라도 지켜보겠다고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 솔뫼성지에, 해미읍성에, 그리고 광화문에‘ 자발적으로’ 나올 이들이 수십만을 헤아린다. 가난한이들의 벗, 낮은 땅에 임하는 성자, 프란치스코를 맞이하는 한국민들의 환영 분위기가 뜨겁다.

규제없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빈민과 약자들의 손을 잡으며, 스스로를 낮추어 행동하고, 교회는거리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인기는 전세계에서도 여느 대중스타 이상이다. 그만큼 교황을 바라보는 전세계인, 그리고 한국인들의시선엔 기대와 희망이 잔뜩 부풀어 있다. 그런데 혹시 교황을 맞는 우리의 큰 기대엔 그를 일종의 메시아로 여기는 마음, 갈등과 문제 해결의 대리인으로보는 안일한 생각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교황은 메시아가 아니라‘ 메신저’다. 그는 국제사회와 우리 사회가 가진 매듭을 직접 푸는 사람이 아니라 매듭이 풀리기를 기도하고, 당사자들에게 호소하며 주장하며‘ 권고’하는 사람이다. 모든 갈등과 분쟁의 해결책은 문제를 가진 당사자들의 손과 머리에 달려 있다는 것이 바로 교황이 권고문‘ 복음의 기쁨’을 비롯한 전한‘ 말씀’의 본래 뜻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교황은 사회 문제에 대해“ 누구에게도 소용없는 일반론에 그쳐서는 안된다”며“ 복잡한 현재 상황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결론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교회의 역할에 대해 말했다. 교회 뿐만은 아닐 것이다. 정치와 경제, 문화, 사회의 지도자들의 역할이기도 하며, 정부와 기업이 해야 할 몫이기도 할 것이다. 교황이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딛은 지30년, 세기의‘ 위대한 성자’로 불리는 이를 맞기 위해어린 학생들이‘ 동원’되야 했던 그 때의‘ 기이한 풍경’로부터 우리는, 한국사회는 얼마만큼 멀리 왔으며, 우리 종교와 정부, 기업은 제 역할을 다 해 왔는지 자성해볼 일이다. 낮은 곳에 임하는 교황에 열광하고 칭송하기 전에, 교황이 전하는‘ 사명’을 다하고있는지 각자 생각해볼 일이다. 

suk@herald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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