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문화
中시진핑 부패척결, 옛소련 고르비와 닮은꼴
뉴스종합| 2014-08-19 10:54
[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강력한 부정부패 척결 정책이 옛소련 마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과 닮은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의 유일한 본보기인 소련 고르바초프의 재건 이데올로기인 ‘페레스트로이카’가 중국에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소련과 닮은꼴=중국 시 주석과 소련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공산당 일당체제의 폐단이 분출하는 시점에 서있다는 점이다.

소련은 1917년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거쳐 1922년 12월 소비에트 연방을 결성했다. 소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 열강으로 미국과 정면대치하는 미소 냉전시대의 주축이었다. 그러나 소련의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초기 일정부문 성공한 듯 보였으나, 곧이어 비효율성을 노출시켰다. 여기에 1979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실패는 ‘패착’으로 기록됐고 공산당 일당 지배에 대한 비판은 고조됐다.

체제 위기 절정에 등장한 것이 고르바초프 서기장이다. 그가 최고 지도자에 오른 1985년은 소련이 탄생한 지 63년 만이다. 이는 중국 시주석의 등장과도 공교롭게 겹쳐진다. 시 주석이 정권을 잡은 2012년도 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1949년)한 지 63년 되는 해다.

고르바초프는 취임 직후부터 페레스트로이카(재건) 기치 아래 개혁 작업에 착수했다. 이중 ‘글라스노스트(개방ㆍ정보공개)’는 공산당 스스로 부패와 비리를 폭로하게 했다. 여기에는 착취를 일삼은 공산당 특권계층인 ‘노멘클라투라(붉은 귀족)’에 대한 서민의 분노가 공산당 체제 자체를 위협한다는 위기론이 한몫했다.

이같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초반 국민의 상당한 지지를 얻었지만, 이후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곧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결국 동유럽 국가의 연쇄적인 민주화 흐름 속에 1991년 소련 공산당은 해체됐고 소련도 붕괴됐다. 소련이 탄생한 지 69년 만이었다. 


▶習, 조용한 ‘페레스트로이카’=시 주석은 성역없는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그 칼 끝에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던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류즈쥔(劉志軍) 전 철도부장,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가 속절없이 스러졌다. 이밖에도 쑤룽(蘇榮)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 한푸차이(韓福才) 전 칭하이성 인민대표대회 부주임, 정샤오위(鄭篠萸) 전 국가식약감독국 국장 등이 각종 비리와 공금횡령으로 파직됐다.

이같은 시 주석의 전례없는 부정부패 정책은 고르바초프처럼 ‘페레스트로이카’나 ‘글라스노스트’와 같은 개혁 방침을 명확히 내걸고 있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산당 부패척결과 국유기업 비리폭로, 국유 독점분야 규제완화 등 개혁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이 옛소련과 다른 점이라면 경제적으로 쇠퇴의 길을 걸었던 소련과 달리 중국은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서민생활도 단기간에 극적으로 향상되고 있고 이에 힘입어 중국 공산당 체제도 견고해 보인다.

그러나 공금횡령과 비리의 온상인 공산당 간부와 시장독점에 따른 국유기업의 과도이익, 경제 급성장에 따른 부의 양극화 등 중국에 직면한 문제는 옛소련과 다르지 않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최근 “저우융캉의 부패 적발은 중국 국민으로부터 갈채를 받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 공산당 체제 부패의 뿌리가 발본색원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머지않아 중국인들은 부패와 양극화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충분치 않다고 느끼고 실망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전했다.

앞으로 시 주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개혁의 성과가 충분히 나올 때까지 국민이 인내력을 가질 것인가 하는 ‘시간과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닛케이는 덧붙였다.

/cheon@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