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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주민들 눈속임 난방공사 추진 논란
뉴스종합| 2014-08-25 07:05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아파트의 난방방식 교체 과정에서 입주자대표회의가 입주민들의 눈을 교묘히 속이고 승인을 받아 공사를 추진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과정에 문제가 있어 주민들이 반발하는데도 속전속결로 공사를 진행한다”며 내년 2월 임기가 끝나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비위 의혹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경기도 의정부시에 위치한 A 아파트 입주민들은 올 초부터 황당한 일을 겪었다. 아파트 난방 시스템 교체에 대한 주민투표 결과 ‘지역난방 방식’이 선정돼 공사를 하게 됐는데, 세대가 부담해야할 공사금액이 투표 전에 알려진 액수보다 10배나 늘어난 것.

입주민들이 받은 첫 안내문에는 공사비 40억원 대부분을 ‘장기수선충당금’, ‘절약금’ 등으로 상환하고, 세대부담금은 8년간 ‘월4500원’이라고 명시돼 있었다. 이를 본 입주민 B 씨는 ‘월4500원의 세대부담금’ 이면 효율이 좋은 지역 난방 방식으로 바꾸는 게 낫다고 생각해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공사가 진행되면서 세대부담금은 ‘월 4만2000원’으로 껑충 뛰었다. 평형대에 따라 월 5만5000원을 부담해야 하는 세대도 있었다. 주민들은 반발했지만 관리사무소 측에선 “주민들이 이해를 잘못한 탓이지 원래부터 똑같은 내용이었다”며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이다.

본지가 해당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 안내문과 공청회 자료 등을 취재한 결과, ‘절약금’이 실제로 주민이 부담해야할 금액임에도 ‘공사비 중 29억원은 ‘절약금’ 으로 상환한다’ 고 표기해 주민들이 부담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안내한 것이 확인됐다. 또 주민들이 부담할 총 공사비도 4억원 이상 슬그머니 늘어나기도 했다.

주민들의 혼란을 초래한 ‘절약금’이란, 공사 후 열 효율이 좋아져 ‘기존 난방비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이다. 예컨대 월 20만원의 난방비가 공사 후 25%의 효율 개선이 된다면 난방비는 월 15만원이 되고, 기존보다 절약된 5만원을 ‘절약금’으로 봐 이를 공사비로 쓰겠다는 논리. 하지만 결국 주민들은 수년간 기존 방식과 똑같은 난방비를 지출할 뿐이고, 시공업체와 대표회의의 예측이 틀려 ‘절약금’이 예상만큼 발생하지 않으면 기존 방식 보다도 난방비를 더 부담해야하는 셈이다.

입주민 B 씨는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돈을 예측해 ‘절약금’으로 만들어 상환 계획을 세운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6년전에 자체 열병합 발전으로 바꿀 때도 비슷했다. 게다가 공사비를 몇 년간 다 갚을 때쯤 이런 저런 핑계로 또 다시 교체를 추진하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입주자대표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수차례 공청회를 통해 투명하게 진행했다”고 해명하면서도 “절약금 부분에 대해 설명이 부족했고 제대로 알리지 못해 주민들에 죄송하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공사비 부담에 대한 집주인ㆍ세입자간 갈등이 우려되는 상황. 세입자가 내는 난방비에 공사비가 포함돼 있는데도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이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관리사무소와 대표회의 측은 “공사비는 집주인 소관이나 세입자가 절약되므로 서로 협의하에 조정하라”면서도 세입자들에게는 이같은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이 아파트에 세입자로 살고 있는 의정부 시의원 D 씨는 “공사비가 난방비에 포함돼 있고 이를 집주인과 협의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고, 세입자 E 씨도 “대부분 세입자들은 이를 모르기 때문에 내 집이 아닌데도 공사비를 부담하게 될 것”이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입주민들은 부랴부랴 300여명의 서명을 모아 해당 지자체에 감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시청에서 돌아온 답은 “설령 문제가 있어도 공사를 중단시킬 권한이 없으니 주민들이 알아서 민ㆍ형사 소송을 하라”는 것. 한편 입주자대표회의는 반발하는 주민들에게 “일부 주민의 방해로 공사가 중단되면 손해배상을 강력히 청구할 것”이라며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이다.

주민들은 이미 기존 난방시스템을 뜯어내는 공사가 시작돼 순간온수기를 사용하는 등 불편을 감수하고 있지만 공사가 끝나는 11월 말까지 난방에 대한 걱정이 태산이다. 한 입주민은 “투표 과정부터 문제가 있었고 여름이 다 지날 정도로 지연됐으면 기존 방식을 고쳐 쓰고 내년 봄에 공사를 하면 되지 않느냐”며 “입주자대표회장 임기가 내년 2월 끝나기에 올해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는것 아니냐. 대표회의와 업체의 결탁이 있는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입주자대표회장은 “한 여름에 공사를 해도 온수가 안나온다고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내년으로 미뤘다가 기존 노후화된 보일러가 터지기라도 하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시청에 자료를 다 제출해 행위허가를 받았고 의혹에 대해선 떳떳하다”고 밝혔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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