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
유럽 대형마트 아시아 굴욕 왜?
뉴스종합| 2014-10-01 11:02
[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유럽의 대형마트가 아시아에서 잇달아 철수하고 있다. 2005년 한국 카르푸 철수의 재판 격이다. 유럽 대형마트의 아시아 고전 원인으로는 ‘현지화 실패’가 가장 많이 지적되지만 아시아 소비 경제학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유럽 대형 슈퍼마켓 체인이 유독 아시아에서만 끊기는 이유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3000달러(317만원) 황금기의 덫에 걸린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시아서 물먹는 유럽마트=아시아서 고배를 마신 유럽 마트는 한국을 시작으로 일본, 중국, 대만, 인도, 베트남 등 전방위에 걸쳐 있다.

유럽 최대 소매업체 카르푸는 최근 인도에서 철수한다고 밝혔다. 카르푸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 지역 사업도 매각할 계획이다. 
인도에서 철수를 선언한 카르푸 매장

앞서 지난 8월에는 독일의 메트로가 베트남 남부 호치민시에서 마트 사업을 태국 기업에 매각했다. 영국 테스코도 올해 적자를 본 중국 135개점을 현지기업에 팔았다. 카르푸와 테스코는 일본에도 상륙했지만 결국 철수했다.

유럽 대형마트는 지난 10년 간 급성장하는 아시아 소비시장을 목표로 공략을 강화했다. 실제로 중국이 연평균 10%의 경제성장을 달성했고 동남아 국가도 최소 5%를 웃도는 경제성장률을 보였지만 유럽 마트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유럽 유통업체가 아시아에서 실패한 원인으로는 ▷당국의 엄격한 규제 ▷물류망 미비 ▷도매업체의 비협조 등이 지적됐다. 그러나 아시아의 복잡한 소비공식을 유럽마트가 간과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1인당 GDP 3000달러 소비공식=개발도상국에서 소비가 활성화되는 시점은 1인당 GDP가 3000달러를 넘어서면서부터다. 3000달러는 생활에 여유가 보이면서 쇼핑에 지출을 늘리는 시작점인 셈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GDP는 인도가 1500달러, 베트남 1900달러로 모두 3000달러에 미치지 못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마트 사업으로 이익을 내기 힘든 지역이라는 의미다.

사진설명: 니혼게이자이신문이 게재한 아시아 주요국 1인당 GDP 현황. 가운데 박스는 유럽 대형마트 황금기 구간.

유럽 기업들은 적자를 내더라도 조기 진출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었겠지만 10~20년에 걸친 장기사업 가능성이 커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카르푸와 메트로가 장기전에 견디지 못하고 사업 기반을 유럽으로 회귀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1만달러 넘어도 고전=문제는 1인당 GDP가 1만달러를 넘는 국가들이다. 한국, 일본, 대만, 중국 일부가 여기에 해당한다.

중국의 경우 지난해 1인당 GDP는 6747달러(715만원)를 기록했다. 소비 ‘바로미터’ 3000달러를 두배 넘는 규모다. 중국에서는 중산층을 중심으로 소비붐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곳에서도 영국 테스코는 실패했고, 카르푸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상하이와 베이징 등 주요 도시의 소득수준이 1만달러(1000만원)를 넘어 2만달러(2000만원)에 근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득이 1만달러를 넘으면 소비자들은 ‘가격파괴’를 내세우는 단순 대형마트보다 편의점이나 전문점을 선호한다.

전례가 바로 일본이다. 1980년대 후반 거품경제 시기를 기점으로 저가를 앞세운 슈퍼체인의 실적이 둔화했다. 이 때는 일본의 1인당 GDP가 1만~2만달러로 성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일본 소비자들은 지갑이 두둑해지자 싼 제품보다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마트에 저렴한 제품 뿐만 아니라 개성있고 세련된 상품을 요구했다. 2000년대 카르푸와 테스코가 일본에 진출했지만 1인당 GDP가 3만달러를 넘어서자 결국 일본에서 철수했다. 문화가 다른 유럽마트가 일본인의 니즈를 충족하지 못한 탓이다.

대만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중반 대만의 1인당 GDP는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향해 가고 있었다. 당시 회원제 매장을 표방한 네덜란드의 매크로가 대만에 진출했지만 2003년 철수했고, 테스코도 2005년 경쟁사에 매장을 내놨다. 이는 한국에서 테스코가 철수한 시점과 맞물린다. 최근 1만달러에 진입한 말레이시아에서는 2012년 카르푸가 일본 유통사 이온에 사업을 매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저가 대형마트의 황금기는 1인당 GDP가 3000~1만달러 사이의 ‘중간소득국가’에서 가능하다”며 ”1만달러를 넘어서면 PB(자체브랜드) 상품 등 을 개발해야 하지만 유럽은 아시아 고객의 취향에 맞는 PB상품을 공급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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