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
홍콩 시위 근저엔 ‘경제 불평등’ 분노 깔렸다
뉴스종합| 2014-10-06 10:54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9일째에 접어든 홍콩 민주화 시위를 촉발한 도화선은 2017년 행정장관 선거안이었지만, 그 근저에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깔려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수년에 걸쳐 유입된 중국 본토의 투기자금으로 홍콩 내 빈부격차가 심화됨에 따라 중국에 쌓였던 불만이 이번에 폭발했다는 지적이다.

▶부동산ㆍ생계비↑…소득불평등 심화=5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홍콩의 부의 양극화는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2012년 현재 빈곤선에 못 미치는 소득으로 살아가는 홍콩인은 전체 인구의 19.6%인 130만명에 달한다.

반면 같은 해 백만장자 수는 전년대비 35.7% 증가한 11만4000명으로 늘었다. 리카싱(李嘉誠) 청쿵그룹 회장 등 홍콩에 거주하는 아시아 최고 갑부 4명의 순자산을 모두 합치면 835억달러(약 88조6000억원)에 육박한다.

이러한 현상은 갈수록 치솟는 집값과 물가 때문에 허덕이고 있는 홍콩 시민들의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통신에 따르면 중국의 연간 인플레이션율은 1997년 본토 반환 뒤 10년 간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해왔지만, 2007년 이후 플러스 전환해 연평균 3.4%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집값은 지난해 가계소득의 14.9배에 이를 정도로 뛰어 시민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중국 본토의 큰손들이 부동산을 쓸어가 홍콩인들이 살 만한 집이 없어졌다는 인식도 있다.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의 레이먼드 융 이코노미스트는 “재화의 유입에 따른 부정적 결과는 물가 압력”이라면서 “이번 시위 뒤에는 홍콩 시민들이 정부의 경제 정책에 느끼는 불만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인 급증에 오염ㆍ경쟁↑=홍콩의 주권 이양 이후 기록적 규모의 중국인들이 홍콩에 몰려들면서 홍콩 시민 간 경쟁이 심화됐다는 불만도 커지고 있다. 지난 2012년 홍콩에서 본토인들을 모든 자원을 쓸어가는 ‘메뚜기’로 빗대면서 반대 시위가 일었던 것도 이 같은 문제의식의 발로다.

특히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젊은 세대가 중국인 유입으로 인한 피해를 가장 많이 보고 있다. 홍콩의 주요 대학교들이 ‘캐시카우’로 떠오른 돈 많은 본토 학생들을 경쟁적으로 유치하면서다. 홍콩 대학을 졸업한 본토인들은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눌러사는 경우가 많아 고용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중국인과의 경쟁에서 밀려난 홍콩 젊은이들은 저소득 일자리로 내몰려 소득 불균형을 가중시키고 있다.

싱가포르 라자라트남 국제대학원의 딜런 로 애널리스트는 “홍콩인들은 본토인들과 재화뿐 아니라 ‘공간’을 두고도 경쟁하고 있다”면서 “지리적 공간뿐 아니라 사회ㆍ문화적 공간까지 위협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은 홍콩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꼽힌다.

홍콩과 인접한 광저우(廣州), 선전(深圳) 등의 도시가 중국의 제조업 기지로 성장하면서 최근 10년 새 홍콩의 대기 질이 급격히 악화됐다. 그 결과 대기오염은 홍콩 720만 인구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커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홍콩 존재감 위기=최근 중국 경제의 급성장으로 홍콩의 위상이 감소하고 있다는 위기의식도 작용하고 있다.

홍콩은 그동안 중국으로 가는 ‘관문’으로 인식되면서 경제적으로 많은 혜택을 봤다. 1997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홍콩의 경제규모는 50% 성장, 2740억달러(약 290조7000억원)까지 커졌다.

하지만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97년의 19%에서 갈수록 줄어 지난해엔 3%에 그쳤다.

이와 관련 홍콩시립대 조셉 청 정치학 교수는 “그들은 단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라면서 “홍콩이 중국 본토의 평범한 도시로 전락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sparkling@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