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너무나 솔직한 ‘우리도 몰랐던 우리의 앎 ’
라이프| 2014-10-10 11:09
勞作 ‘한글의 탄생’의 저자 知韓派 히데키
이번엔 한국의 지성을 탐구하는 책 출간
한국 46명, 일본 94명 지식인 대거 참여
정도전·이황·김구·이어령 저서까지 섭렵
불편할 정도로 솔직한 주장·견해들 게재



한국의 지(知)를 읽다/
노마 히데키 엮음, 김경원 옮김/위즈덤하우스
한글과 한국의 말글살이에 대한 놀라운 통찰과 연구를 담아낸 노작 ‘한글의 탄생’으로 한일 양국 지성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줬던 노마 히데키(61) 일본 국제교양대학 교수가 또 한번 실험을 감행했다. 한일 양국의 지식인 140명에게 ‘한국의 지’를 물어 그 답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낸 것이다. 한국에서 46명, 일본에서 94명이 참여했다. 책은 지난 2월 일본에서 먼저 나왔고, 여덟달만인 최근 우리말로 번역 출간됐다. ‘한국의 지(知)를 읽다’(김경원 옮김, 위즈덤하우스)이다.

노마 히데키 교수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현재 일본어의 세계에서 동시대의 한국문화는 이미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할수 있다”며 “언어 자체를 매개로 한 분야보다는 감성적인 접근이 훨씬 더 가능한 영화, 음악, 미술 등의 분야를 더욱 유연하고 폭넓게 받아들여 왔다”고 했다. 하지만 “문화를 널리 수용하고 있는 양상에 비해 ‘한국의 지’에 관한 물음을 꺼내 놓자마자 일본어의 세계는 망연해지기만 한다”며 이는 “일본어권에서 감상하고 누리고 애호하며 감동하는 대상으로서의 한국의 문화는 존재해도, 읽고 듣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고투를 벌이며 함께하고 자기 것으로 여기며 살아갈 수 있는 대상으로서 한국의 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국의 지를 읽다’는 아시아지식공동체를 위한 시도이며, 교류를 위한 차이의 확인이라 할 것이다. 노마 히데키 교수는 한일 양국의 학자, 평론가, 언론인, 작가, 대중문화전문가 등 지식인들에게 ‘한국의 지’를 만나게 해 준 책 1~5권 정도를 추천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적어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는 노마 히데키 교수가 말한 것처럼 “이런 것까지 알고 있다니”라는 감탄과 “고작 이런 것 밖에는 모른다니”라는 실망 사이에 있다. 무엇보다, 일본의 내로라하는 지성 94명의 면면도 놀랍거니와 이이와 이황의 유학이론으로부터 최근 한국 젊은 소설가들의 작품까지 아우르는 분야와 추천서 목록의 폭이 상상 이상이다. 각 필자의 글을 2000자 내외로 제한한 점이 아쉽지만, 오히려 대중적으로 읽기에는 편하다. 한국 독자들에겐 ‘일본 지식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지’ ‘우리도 몰랐던 우리의 앎’이 지적 흥분도를 높인다. 이런 종류의 기획에서 으레 따르는 접대용 수사, 이른바 ‘주례사 비평’도 없다. 한국의 독자들에겐 때로 불편할 정도로 솔직하다.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철학가로 유명한 가리타니 고진은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한국의 지와 만난 책으로 꼽았다. 가리타니 고진은 이 책이 “일본의 문화를 비역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는 점에서 동시대의 일본인론과 일본 문화론의 틀을 넘어서지는 않는다”며 “예를 들어 일본의 기업이 소형차나 컴퓨터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축소’ 지향 때문이 아니라 대형으로는 도저히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어 세계사와 일본사를 일별하며 역사적인 결과로서의 축소 지향을 말한다. 그러나 일본인은 축소할 때는 독창적이고 훌륭하지만 확장하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아 파탄을 맞이한다는 이어령 교수의 시대 앞선 통찰을 높이 사며 지금 일본은 ‘축소’의 독창성도 없어져 버렸고, 허술한 팽창주의가 만연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중국사상사가 가와하라 이데키는 정도전의 ‘삼봉집’과 이황의 ‘퇴계선생문집’, 이이의 ‘율곡선생문집’, 송시열의 ‘주자대전차의’, 이익의 ‘성호선생문집’을 통해 조선의 사상과 철학을 개괄하고, “위대한 지의 보고”라고 꼽는다.

일본어로 번역된 한국 소설은 극히 제한적이지만, 이를 통해 한국의 지를 경험했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러시아 문학자 가이자와 하지메는 이승우의 ‘한낮의 시선’에 대해 “거의 신학적이라고 할 준엄한 부재의 비전이야말로 현대 일본 문학이 상실한 지 오래된 것”이라고 했다. 영화감독 니시카와 미와는 이창동의 소설집 ‘녹천에는 똥이 많다’를 추천했는데, 영화에 대한평이 탁월하다. 그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일일이 꼽으며 “어느 작품이든 광폭한 분위기로 휩쓸거나 억지 고요함을 띠는 법 없이 비단실 같은 섬세한 실로 복부의 모공부터 소리도 없이 꿰매다가 어느샌가 오장육부를 꽁꽁 묶어 버린다.”고 했다.

출판인 구마자와 도시유키는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근대 시민 혁명’을 경험한 나라”라고 한국을 일컬었는데, ‘한국의 지를 읽다’의 많은 필자들이 김지하의 작품이나 ‘전태일 평전’ 등 한국의 독재정권과 민주주의 시기를 다룬 책들을 다수 골랐다.

반면 한국 독자들에겐 영 불편할 주장을 펼친 일본 지식인들도 있었다. 문학자 나쓰이시 반야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거론하며 김알지는 일본에서 건너간 고대 조선이며, 탈해왕은 고대 일본 출신의 신라왕이라고 했다. 소설가 아라야마 도호루는 한국 역사학계의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평론가 세키카와 나쓰오는 “한국이 고집하는 내셔널리즘은 고래부터 있어 온 ‘남을 싫어하는 마음’이 아닐까”라고 물었다.

그러나 고대 및 중세 일본에 전해진 한국 문화를 이해해야 일본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강조하는 지식인들도 있었고, 출판인 류사와 다케시의 경우는 ‘백범일지’를 추천하며 “김구는 민족주의자이지만, 그의 내셔널리즘이 근대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동질의 것이라 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고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시작부터 ‘세력 확장주의’가 아니었던가. 그 정반대의 지점에 서서 어떤 보편적인 정신이 태어났는지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백범일지는 그런 물음을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분야가 다채롭고 시각은 다양하지만, ‘한국의 지를 읽다’의 시도와 모색은 다음과 같은 건축가 단 노리히코의 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한중일의 역사인식 문제와 영토 문제 때문에 세 나라의 사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정부 뿐만 아니라 시민 사이에도 감정적인 균열이 더욱 격해지는 오늘날, 나는 눈에 보이는 ‘지’의 문화 교류만이 오로지 광명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는다. ”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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