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한국고전번역원의 ‘나라가 망한 원인’ 들여다보니…
라이프| 2014-10-13 15:48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고전 문헌을 수집ㆍ정리ㆍ연구ㆍ번역ㆍ보급함으로써 한국학 연구의 기반을 구축하고 전통 문화를 계승ㆍ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도록 설립된 한국고전번역원은 국내 지식과 사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1965년 정부 후원기관으로 출범했다. 예술원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지낸 월탄 박종화 초대회장은 1966년 제1회 5.16 문학상을 받은 바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이 조선 중기의 사상가 여헌 장현광의 일갈을 제시하면서 ‘나라가 망한 원인’과 바람직한 대응책을 제시해 눈길을 끈다.

번역원의 남지만 연구원이 예시한 글은 ‘理旣亂而人物不亂(이기란이인물불란), 未有其理也(미유기리야). 道其亡而家國不亡(도기망이가국불망), 亦未有其道也(역미유기도야)’이다. ‘이치가 이미 혼란한데도 사람과 사물이 혼란하지 않는 이치는 없으며, 도가 이미 망했는데도 집안과 나라가 망하지 않는 도리 또한 없다’는 뜻이다. 


남 연구원에 따르면, 장현광은 이 글로써 임금이 몽진할 정도로 나라가 망할 위기에 직면한 원인을 진단했다. 조선이 임진왜란에 잘 대처하지 못한 까닭은 왜군이 전쟁으로 단련된 것 등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것들은 주변적인 것이고, 근본 원인을 우리나라가 이치와 도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임진왜란 때 나라가 무너진 것은 임금부터 공경대부는 물론이고 백성까지 모두 자신의 직분을 내팽개겨쳤기 때문이고, 이치와 도리를 지켜야 할 임금과 관원들이 먼저 도망가는데 군대와 백성이 그 자리를 지킬 이치와 도리는 없다는 것.

남 연구원은 “사회, 국가라는 것도 결국 사람들의 모임이고 눈에 보이는 규칙이나 보이지 않는 규칙에 의해서 유지되며, 장현광이 말하는 이치와 도리라는 것은 그 사회의 규칙과 그 규칙이 의지하는 가치 기반을 말한다”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지키기를 바라고 지키리라 믿는 것인데, 상대방이 그 믿음을 배신하면 이쪽도 더는 그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게 되면서 이치는 그냥 무너진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세월호 사고 때, 우리는 책임을 맡은 사람이 먼저 도망가 버린 것을 보았다. 그들을 믿고 자리를 지킨 사람들은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뒤로 사고 수습과 진상 조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이제는 믿음이 위태위태하다”면서 세월호를 둘러싼 지금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망조’의 단면으로 보았다.

남 연구원은 “지금 우리는 우리 시대의 임진왜란을 앞에 두고 있다. 자신의 책임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직분을 다함으로써 이치와 도리를 지켜,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는 사람이 있기를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고 있다. 충무공 같은 구세주를 바라기보다는 우리 속에 들어 있는 망국의 원인을 없애야 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눈앞의 이익과 편리 때문에 불합리를 묵인하고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끝까지 이치를 따지고 도리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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