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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서 죽어라…” 딸에 며느리에 학대당하는 ‘슬픈 황혼’
뉴스종합| 2014-10-14 11:17
노인학대 1년새 35% 급증
가정사로 치부 경찰도 손 놔…아동학대와 달라 처벌도 애매



#1. 서울 강서구에서 사위와 외손주, 딸과 함께 살던 김모(76ㆍ여) 씨. 조울증에 걸린 김 씨의 딸은 1년 넘게 “XX년아 나가라”, “죽여버리고 싶다”는 폭언을 퍼붓고 폭행을 일삼았다. 택시운전을 하는 사위도 처음에는 아내를 말렸지만 나중에는 “흙탕물에 얽히고 싶지 않다”며 손을 놨다. 견디다 못한 김 씨는 지난 7월 딸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서울 강서경찰서에 신고했다. 경찰은 존속폭행으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김 씨는 “딸을 처벌할 수 없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경찰은 딸에 대한 처벌은 하지 못한 채, 서울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과 협력해 김 씨를 쉼터로 옮겼다.


#2. 서울에서 50평 넘는 아파트를 보유한 장모(81ㆍ여) 씨는 약 15년 전 아들 내외를 집에 들였을 때부터 냉장고에 손을 대본 적이 없다. 아들과 며느리는 말 한마디도 말을 걸지 않고 밥을 챙겨주지도 않는다. 장 씨가 냉장고 문을 여는 것도 못하게 한다. 장 씨는 “돈 한푼 안주던 내외가 말없이 여름휴가를 떠났을 땐 정말 죽고싶었다”고 했다. 장 씨는 노인정에서 청소를 하며 돈 10만원을 받아 삶을 꾸린다. 밥도 노인정에서 해결하지만, 노인정이 문을 안여는 일요일ㆍ공휴일이 큰 걱정이다. 그는 “여름에는 집 밖에 나가 있으면 됐는데 겨울에는 추워서 어디 갈 데도 없다”며 울먹였다.



주로 자녀가 가해자인 가정 내 노인학대 문제가 사실상 ‘치외법권’ 상태에 놓여 있다. 노인학대는 아동학대, 청소년학대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된지 오래됐다. 하지만 대부분 쉬쉬하는 분위기다. 노인이 자식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해도 처벌을 원치 않아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고, 아동학대와 달리 노인학대를 이웃에서 목격했다고 해도 제3자가 개입할 수 있게 하는 법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 씨의 은행원 아들은 주식 투자에 실패한 뒤 장 씨 몰래 문서 등을 도용해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금을 5억 넘게 받았다. 그 돈마저 이미 탕진한 상태. 경찰은 아들을 사문서 위조 혐의로 처벌하고, 아파트를 팔아 몇 천만원이라도 건져 장 씨에게 혼자 살라고 권유하지만 장 씨는 “아들이 어떻게 되겠느냐. 차마 못하겠다”고 거절하고 있다. 경찰은 “할머니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불쌍해서 차마 못 보겠다”고 했다.

지난해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노인학대는 3520건으로, 전년보다 34.6%나 증가했다. 학대 행위자와 노인과의 관계는 친족 중 자녀가 2138명(아들 1619명ㆍ딸 519명)으로 69.1%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현장에서 노인학대 사례를 접하는 이들은 노인학대가 아동학대처럼 제3자의 고발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해 “아동과 달리 노인은 자기결정권이 있기 때문에 강제개입은 무리”라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임춘식 한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무원은 현실을 모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80대 노모가 기초수급권자로 월 40만원을 받는데 50대 아들은 이 돈으로 술만 먹으며 노모를 폭행한다. 요양원에 보내려고 해도 40만원을 못받을까봐 간섭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김미숙 강서경찰서 가정폭력전담팀장은 “노인에게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그것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라며 “자녀가 노인을 폭행해도 노인이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학대가 반복되고 점점 심해진다. 존속폭행을 반의사불벌죄에서 배제하는 법개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지웅 기자/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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