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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문화대 개편안 ‘홍역’… 학생 · 교수 논의 철저 배제 논란
뉴스종합| 2014-10-29 11:54
기능중심 학과 통폐합 가닥…전문가 양성 취지 퇴색 지적


‘청와대가 허가를 해줘야 한다’는 이유로 총장이 공석인 한국전통문화대학교가 개편안을 두고 홍역을 치르고 있다. 추진 과정에서 학생들이 철저히 배제됐고, 개편안이 기능 중심의 학과 통폐합으로 가닥을 잡고 있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전문가 양성이라는 설립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전통문화대학은 전통문화를 수호하고 가꾸겠다는 취지로 지난 2000년 문화재청이 문화재관리학과, 전통조경학과 등 2개과로 한국전통문화학교를 개교했다. 2012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설치법이 시행되면서 지금의 한국전통문화대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최근 문화재청이 대학 체제 개편안을 추진하면서 절차상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29일 한국전통문화대 총학생회에 따르면 이 학교 발전방안 전문가 태스크포스(TF) 구성이 된 것은 지난 5월23일로, 이후 학생들이 추진 사실을 인지하고 대자보를 통해 입장을 밝힌 것은 그로부터 4개월 뒤인 9월19일이었다. 그동안 학부, 대학원 학생들은 개편안 추진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TF와 교수회의에서만 이러한 내용이 공유됐던 셈이다.

학내 의견 수렴이라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지난 7월 전부 9명이 참석한 졸업생ㆍ재학생 간담회는 문서상으로 공청회로 이름이 바뀌고 개편안 추진의 근거로 사용됐다는 게 총학의 주장이다.

한국생산성본부의 대학 체제 용역보고서 발표가 이달 21일에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미 문화재청이 6월과 9월 2차례의 교수회의를 통해 개편안을 설명하며 대학 개편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또 지난 9월29일 학교를 찾은 문화재청 차장은 학생들의 반발에 “9ㆍ23 개편안은 지시한 바 없다”며 원점에서 논의를 다시 하자고 제안했으나 10월16일 학생대표자 간담회에서 9ㆍ23 개편안을 재확인하는데 그쳤다. 9ㆍ23 개편안은 기존의 6개 학과를 2개로 줄이고, 일반대학원과 전문대학원 체제에서 전문대학원 1원 체제로 축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은주 총학생회 회장은 “개편안 논의를 처음 접한 뒤 학교와 문화재청에 회의록 자료를 공개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답변조차 받지 못했다”며 “지난 학생대표자 간담회에서도 기본 개편안은 정해졌으니 세부 내용에서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절차상의 문제 뿐 아니라 내용상의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국보 1호 숭례문의 단청 복원공사에 부실한 화학 안료와 접착제가 사용된 것이 경찰 조사에서 드러난 가운데, 개편안이 추구하는 수리기술 중심의 특성화대학으로 갈 경우 전통문화 계승이라는 취지를 살릴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화영 총동문회장은 “숭례문 복원에 참여했던 단청장도 한번도 해보지 않은 기법을 적용했다”며 “이번 개편 TF의 참석대상은 보존과 수리 전문가가 전부였고, 전통문화의 발전이나 문화재 활용 등에 관련된 전문가는 단 한명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문화재 복원 기법도 맥이 끊긴 가운데, 보수 중심의 개편안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리 기술인 양성은 문화재 보존과 활용을 위한 학문연구와 실무기술이 겸비해야 하는 문화재 교육 방향과 상충된다는 게 재학생과 동문들의 입장이다. 일반대학원 총학생회도 성명을 통해 “‘특수목적대학’은 학문의 대상 영역이 특수한 것이지 ‘특수시장’에 취업하기 위한 대학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태형 기자/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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