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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패자로 만드는 ‘경쟁의 역설’…자본주의 ’경쟁 신화’에 대한 실증적 비판
라이프| 2014-10-30 17:42
경쟁의 배신/마거릿 헤퍼넌 지음, 김성훈 옮김/알에이치코리아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

#1 2013년초 하버드대에서는 대규모 부정 행위 스캔들 이후에 일부 학생들을 퇴학 시켰다. 집에 가져가서 푼 후에 제출하는 시험에서 똑같은 답이 여러 답안지에서 나타나자 279명의 학급 인원 중 절반 이상의 학생들에게 자퇴권고가 내려진 것이다.

#2 2009학년도에서 2010학년도 사이 영국 대학교에서 발각된 부정 행위 사례는 1만7천건이 넘는다. 하지만 모두 밝혀지지 않았을 뿐 실제로는 그 이상일 것이라 믿는 사람이 많다.

#3 의사 겸 생화학자 로버트 골드만은 1984년 198명의 엘리트 선수들에게 ‘약물 검사에서 발각되지 않고 금메달을 보장해주는 약물이 있는데 복용할 경우 5년 후 부작용으로 사망한다면, 과연 이 약을 먹겠는가?’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52%의 선수들이 이 약물을 먹겠다고 대답했으며, 이후 10년 동안 2년마다 반복된 설문에서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BBC 프로듀서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기업가인 마거릿 헤퍼넌이 지은 ‘경쟁의 배신’에 등장하는 사례들이다. 최근 번역 출간된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경쟁’의 이면과 역설을 다양한 연구를 통해 보여준다. 과학, 언론, 기업을 비롯해 교육, 결혼, 스포츠, 종교, 영화, 음악, 건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의 양상과 경쟁이 역작용을 신랄하게 그렸다.

“우리는 경쟁을 마치 종교처럼 맹신해왔고, 경쟁이 놀라운 효율과 기적적인 경제 발전, 그리고 무한한 창조성과 눈부신 혁신을 안겨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 대신 우리는 부정 부패, 사회적 역기능, 환경파괴, 낭비, 환멸, 불평등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저자의 진단이다.

승자 아니면 패자인 사회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남들보다 우위에 서려는 열망을 부추겼고, 그 결과 모두가 패자인 상황으로 몰고갔다는 것이다.

이 책은 영국의 한 가정 내 삼형제간의 ‘경쟁’의 양상으로부터 시작해 세계적이고 세기적인 영향을 끼친 대형 사건이나 대규모 기업의 사례들을 다양하게 논한다.

특히 기업들의 ‘높이’와 ‘규모’를 향한 경쟁은 다양한 부작용을 낳았다. 일례로 국경을 넘어선 사상 최대의 인수합병이었던 RBS(스코틀랜드왕립은행)의 대형 거래는 결국 영국에 240억 파운드 손실을 입혔다. 슈퍼 메이저 기업을 목표로 했던 영국의 석유회사 BP사는 무리한 비용 절감과 인수합병전략으로 인해 2005년 정유공장 사고를 냈고 15명의 사망자와 180명 이상의 부상자를 낳았다. 또 2006년 알래스카 노스슬에서 기름 유출 사고를 냈다. 이어 2010년에는 딥워터 호라이즌 굴착기에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양 기름 유출 사고를 기록했다. 규모 경쟁은 기업뿐 아니라 건축, 종교, 국가도 해당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크라이슬러 빌딩과 맨해튼 은행의 높이 경쟁이다. 종교계에서도 교회 건물이나, 성도 수 또는 유명 인사의 방문 등을 두고 경쟁하면서 종교가 지녀야 하는 본래의 순수성과 가치를 상실해가고 있다. 또 이 책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처럼 국제적 협력을 요구하는 연구가 경쟁 체제로 이루어질 경우 인류의 발전에 미치는 악영향과 현재 원자재 시장에 불고 있는 거품이 가져올 세계적 식량난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세계 최고로 꼽히는 회사들 역시 내부에서 경쟁의 역설에 부딪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10년 동안 진정 혁신적이라 할 만한 기술 개발에 실패한 원인에 대해 저자가 당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결과, 임직원 평가제도인 ‘스택랭킹’이 꼽혔다. 이는 성과에 따라 시행되는 강제해고순위 제도이다. 직원들의 능률을 향상시키고 성과를 높이기 위한 회사 내 점수판이 실제로는 역작용을 하는 것이다. 경쟁심과 불신에 붙들린 직원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회의 석상에 올리지 않으며, 단기적인 이익에만 연연하고, 성과를 높이기 위해 무리수를 두게 되며, 회계 조작을 부추기는 모습들을 보인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또한 경영진들의 회의실에서는 직원 해고 순위를 두고 서로 거래나 흥정을 하는 장면들이 발생한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이 책은 제너럴모터스, 엔론, 리먼 브라더스, 더 리미티드 등의 사례를 통해 기업 내 과열경쟁이 어떻게 회사를 창조와 혁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지도 조명한다.

저자는 경쟁이 창조, 개성, 성장, 가치, 창의, 혁신, 발전 등의 가치 실현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국 내외의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경쟁이 없을 때 이루어지는 진정한 혁신을 아럽, 고어&어소시에이츠, 차이스, 화웨이, 인터페이스, 보스턴사이언티픽 등의 기업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 뮤지션 아델의 작업 방식부터 크라우드 소싱을 통한 신약 개발, 싱가포르의 성 요셉 학원, 노동력 착취를 거부하는 ‘스웻샵 프리’의 공장, 수평적 계층 구조와 고용인 소유제를 시행하는 혁신적 기업들을 통해 우리는 ‘경쟁’보다 더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며, 지속 가능한 대안을 협력과 상호의존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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