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현 원장이 전격 사퇴하면서 진웅섭 전 정책금융공사 사장이 금융감독원 새 수장으로 취임했다. 최 원장은 박근혜정부의 첫 금융감독 사령탑이었지만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1년8개월 만에 중도 하차했다. 동양그룹 사태,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KB금융 내분 등 잇단 금융사고에 대한 수습이 매끄럽지 못한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임이 사실상 문책성 인사로 물러나면서 바통을 이어받은 신임은 그 만큼 책무가 막중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박근혜정부 2기 출범에 맞춰 임명된 만큼 금융감독 쇄신에 대한 압박감도 어느 때 보다 높다.
진 신임 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금융산업과 감독당국에 대한 신뢰회복을 강조했다. 지난 수년간 발생한 금융사고의 원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두껍고 강한 방패’와 같은 굳건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도 했다. 우리는 금융산업과 감독당국이 국민적 신뢰를 얻으려면 그 출발점은 금감원의 자기혁신이 돼야 한다고 본다. 금융당국은 도덕적 해이에 빠져 ‘갑(甲) 질’이나 해대면서 금융회사들에만 건전성을 외친다면 정책의 약발이 먹힐리 만무하다. 지난 주말 불거진 고위직 자녀의 결혼 축의금 행렬 소동은 금감원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을 말해준다. 굵직굵직한 금융사고 배후에는 언제나 ‘금피아(금융감독원+마피아)’가 똬리를 틀고있어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경영진이 고객 돈을 횡령해 돈놀이를 한 2011년 저축은행 사태부터 올해 금융권을 뒤흔든 1조8000억원대 KT ENS 대출 사기까지 금감원 전ㆍ현직 간부가 연루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금피아가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사들로 숨어들어 금감원 후배들과 유착하는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진 원장이 강조한 ‘두껍고 강한 방패’는 거꾸로 금융사고와 부패를 가리는 방패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금감원의 내부 혁신과 더불어 진 원장에 부여된 과제 가운데 하나가 금융사 지배구조의 개선이다. 그러나 난마처럼 얽힌 금융사 지배구조 실타래를 푸는 첫 작업은 청와대와 금융위가 맡아야 한다. KB금융지주 사태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청와대에서 내려보낸 낙하산과 모피아 출신의 관료가 이전투구를 벌이는 사이에 KB금융의 경영은 엉망이 됐고 공신력은 땅에 떨어졌다. 후진적 지배구조의 원인 제공자인 청와대와 금융위가 저지른 일의 뒷수습이나 맡게 되는 금감원에 책임을 묻는 일이 반복된다면 금융권 쇄신은 공염불이 될 게 뻔하다. 진 원장이 제대로 일을 하게 하려면 ‘낙하산 폐해’부터 없애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