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이후 30% 폭락한 국제 유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OPEC회원국들이 감산에 나설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유가하락을 견딜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감산을 필요없다는 입장인 반면 당장 한푼이 아쉬운 베네수엘라와 이란 등은 원유생산을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가하락 왜?=국제 유가가 하락하는 원인은 기본적으로 수요보다 공급이 많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올해 세계 석유 수요는 하루 평균 68만배럴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 반면, 10월 원유 생산량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하루 평균 270만배럴 증가했다.
이같은 수급 불균형으로 북해산 브렌트유는 배럴당 80달러가 붕괴됐고,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는 배럴당 75달러대까지 주저앉았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게재한 OPEC 주요 회원국의 석유장관과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 사우디아라비아 958만배럴/이라크 332만배럴/이란 276만배럴/베네수엘라 246만배럴/나이지리아 188만배럴/리비아 87만배럴. |
국제 원유의 공급과잉은 ‘지구촌 공장’인 중국의 성장둔화에 따른 ‘수요 스테그플레이션’과 미국의 셰일혁명에 따른 셰일유 증산이 맞물려 발생했다.
미 에너지정보국(EIA)의 주간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산유량은 이달 7일까지 매주 하루 평균 906만배럴에 달했다. 이는 1983년 통계 발표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900만배럴을 돌파한 것이다.
▶미국 vs 중동 ‘치킨게임’=미국은 자국의 셰일유와 셰일가스로 중동산 원유를 대체하면서 에너지 패권다툼에 불을 붙였다.
미국발 셰일혁명이 몰고 온 원유 증산 바람이 국제유가를 떨어뜨리면서 세계 산유국 카르텔인 OPEC과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그동안에는 원유가격이 크게 떨어지면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OPEC이 감산 움직임을 보이며 생산 조정에 들어갔지만 이번에는 ‘중동 대 미국’의 신경전으로 치닫고 있다.
OPEC 측은 “가격하락이 지속되면 미국 셰일유 생산의 사업 수익성이 떨어져 먼저 생산에 제동을 걸 것”으로 보고 버티키 작전에 들어갔다.
비전통적인 원유인 셰일유는 2000년대 중반부터 개발이 본격화 돼 생산비용이 높은 편에 속한다. OPEC의 압달라 엘 바드리 사무총장은 지난 10월 “셰일유가 채산성을 가지려면 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이상은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 거대 유전의 생산비용은 5~25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 측 주장은 다르다. 미 석유탐사 시추업체인 슐룸베르거는 미국 셰일 개발 손익분기점에 대해 “2009년에는 배럴당 93달러였지만, 2013년에는 53달러까지 떨어졌다”며 미국이 현재의 유가하락으로 생산을 줄이는 일은 없을 것을 시사했다.
그동안 미국이 자원개발 노하우를 축적하고 기술 개발을 거듭해 생산비용을 예상보다 많이 낮춘 것으로 풀이된다.
슐룸베르거의 한 간부는 “미국 내 생산기지의 80%는 손익분기점이 배럴당 40~80달러까지 내려왔다”고 주장했다. 아직까지 증산을 멈출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OPEC 생산량(일평균 백만배럴, 검은색)과 브렌트유 가격(배럴당 달러, 회색) 추이. <출처:FT> |
▶OPEC 맏형들의 속내=미국 셰일유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자 OPEC회원국들은 주판 튕기기에 분주하다.
OPEC내부는 유가하락을 감내할 수 있는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쿠웨이트는 가능한 감산을 하지 않으면서 아시아에서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를 원하는 입장이다.
UAE의 모하메드 알 마즈루이 에너지장관은 “(최근의) 가격 하락은 패닉이라고 할 만큼 위중하지 않다”며 “지난 3년간 최고 안정기를 보낸 것이 이례적인 것일 뿐 가격 변동은 일반적인 것”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쿠웨이트 석유 당국자도 “우리가 감산해도 다른 나라(미국)가 증산하면 문제는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거대 산유국이 유가 하락에도 배짱을 튕기는 이유는 막대한 준비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2000년 정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20%에 달했지만 이후 유가랠리 속에 GDP의 2% 수준으로 줄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들 국가는 “국제유가 침체가 2~3년간 지속된다고 해도 국채발행으로 재정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UAE와 쿠웨이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게재한 국가별 재정수지 균형 유가 (배럴당 달러) |
▶유가에 죽고 사는 회원국=이와 달리 베네수엘라와 나이지리아, 이란 등은 유가하락에 속을 끓이고 있다.
이들 국가는 배럴당 100달러 미만으로 원유를 판매하게 되면 심각한 재정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때문에 이란의 비잔 남다르 장게네 석유장관은 이번 OPEC 총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원유 생산 감축을 설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이치방크에 따르면, ‘적자살림’을 피할 수 있는 적정유가는 베네수엘라가 배럴당 162.2달러, 나이지리아 126.2달러, 러시아 100.1달러로 나타났다.
OPEC회원국은 아니지만 주요 산유국인 러시아도 감산을 바라는 입장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 제재의 직격탄을 맞은 러시아는 국제 유가 하락을 강건너 불구경할 수 없는 상황이다. 러시아의 수출에서 석유와 천연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68%에 달한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서방 제재로 연간 400억달러, 국내총생산(GDP)의 2% 정도 손실이 생기고 있고,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해 900억~1000억달러의 손실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파멸적인 유가하락”이라고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러시아는 OPEC회원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OPEC총회가 열리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국영석유회사 대표를 파견해 감산을 촉구할 예정이다.
한편, 블룸버그는 이번 OEPC총회에서 산유량 감축 가능성이 50%라고 점쳤다. 블룸버그통신은 애널리스트 2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정확하게 반반으로 나뉜 것이 지난 7년간 설문조사가 행해진 이래 처음이라며 그만큼 OPEC이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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