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뉴욕발 대한항공 일등석에서 조 전 부사장이 견과류 서비스를 문제삼아 비행기에서 내쫒은 승무원과 사무장, 조 전 부사장의 앞자리에 앉아 있던 일등석 승객 박모(32ㆍ사진)씨의 증언이 이번 사태에 기름을 붓고 있다.
문제의 사무장인 박창진 사무장은 12일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조 전 부사장으로부터 욕설을 듣고 폭행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회사로부터 거짓 진술을 하도록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일등석 승객 박모씨는 13일 서울서부지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고 기자들과 만나 조 전 부사장이 승무원에게 내릴 것을 강요했고, 승무원에게 고성을 지르는가 하면 손으로 승무원의 어깨를 밀쳤다고 전했다.
박 씨는 당시 기내의 상황을 모바일 메신저로 실시간으로 친구에게 전했으며, 이 메시지를 검찰에 제출했다.
박 씨는 “조 전 부사장의 목소리가 워낙 커서 일반석 사이 커튼이 접힌 상태에서 일반석 승객들도 쳐다볼 정도였다. 승무원에게 PC로 매뉴얼을 찾아보라는 말을 하기에 ‘누구기에 항공기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무릎을 꿇은 채 매뉴얼을 찾는 승무원을 조 전 부사장이 일으켜 세워 밀었다. 한 손으로 승무원의 어깨 한쪽을 탑승구 벽까지 거의 3미터를 밀었다. 매뉴얼이 담긴 파일을 말아서 승무원 바로 옆의 벽에다 내리쳤다. 승무원은 겁에 질린 상태였고 안쓰러울 정도였다”라고 증언했다.
박 씨는 “처음에는 승무원만 내리라고 하다가 사무장에게 ‘그럼 당신이 책임자니까 당신 잘못’이라며 사무장을 내리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박씨는 조 전 부사장이 사무장을 때리거나 욕설을 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고, 음주 여부도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어 박씨는 소란이 20여분 계속됐으며 이륙 후에도 기내 사과방송이 없었다고 전했다.
또 “출발 후 기내에서 심적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니까 언제 일이 터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꾸 눈치를 보게 되더라. 승무원에게 물어봤을 때 내부적인 일이라고만 해 더는 물어보지 않았는데 기사를 보고 너무 황당했다”라고도 했다.
박씨는 “고작 그런 일 때문에 비행기를 돌려야 했고,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해 스트레스를 받고 온 14시간이 너무 화가 나서 콜센터에 전화해 항의했다. 콜센터에 연락 후 지난 10일에야 대한항공의 한 임원이 전화해 사과 차원이라며 모형 비행기와 달력을 보내주겠다고 말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두번이나 전화를 해도 바로 전화가 오지 않았고, 해당 임원은 ‘혹시 언론 인터뷰를 하더라도 사과 잘 받았다고 얘기해달라’고 해 더 화가 났다”면서 “나중에 이미지가 깎이니까 애매한 사과문을 발표해 놓고 무마시키려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승무원에게 고성을 지르는가 하면 손으로 승무원의 어깨를 밀쳤다고 전했다. 그는 사건 이후 대한항공 측에 항의했지만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 전 부사장은 박 사무장의 폭행 주장에 대해 언론에 “처음 듣는 일이다”, “모르는 일이다”고 부인했다.
검찰은 앞서 해당 항공기의 기장과 사무장을 불러 조사한 데 이어 승객 박씨 등 관련자를 불러 집중 조사했다.
이번 사태 수습 과정에서 회사 측의 거짓 진출 강요와 사건 은폐가 사실로 확인되면, 조양호 회장 일가는 도덕적으로 치명상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조 전 부사장은 사건 직후 총괄부사장직에서만 사퇴해 ‘무늬만 사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조 전부사장의 직접 사과나 총수의 사과가 신속하게 나오지 않았다.
대한항공이 이번 사태를 안이하게 인식하는 사이 외신에까지 ‘땅콩 회항’이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각종 패러디가 등장하는 등 사태는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뉴욕 한인 사회에선 대한항공 불매 운동까지 일었다.
조 회장은 지난 12일에야 “제가 (자식) 교육을 잘못시킨 것 같다. 죄송하다”면서 딸을 그룹의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너 일가의 의견이 절대시되는 회사의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를 먼저 뜯어고쳐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경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번 횡포는 이 비행기는 내 것이며 모든 직원이 내 소유물이라고 착각하는 전근대적 천민주의 사고방식이 불러온 제왕적 경영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대한항공은 1997년 괌 추락사고, 1999년 상하이공항 추락사고가 터지자, 당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오너 경영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받고 이틀 만에 창업주 조중훈 회장이 퇴진하고 조양호 당시 사장이 사장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조 회장은 같은 해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3세 경영인인 조원태 부사장 역시 도로에서 시비가 붙어 70대 할머니를 밀어 넘어뜨려 입건되고, 이를 비판하는 시민단체 관련자들에게 폭언하는 등 부적절한 언행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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