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새정연의 ‘바보’ 오명 지우기
뉴스종합| 2015-01-06 11:07
[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 “우파는 미래를 위한 변화보다는 기존 질서와 기득권 수호를 위해 봉직하는 고집불통이고, 좌파는 말만 많았지 개혁의 디테일과 대안에 약한 선동꾼이다”, “우파는 세속적이고, 좌파는 낭만적이다”, “우파는 친미,친일이고 좌파는 종북, 친중이다”, “우파는 대놓고 탐욕을 부리고, 좌파는 뒤에서 호박씨를 깐다”, “우파는 경제성장을 주도했고, 좌파는 민주주의를 이끌었다.”

우리 사회 우파와 좌파를 규정하는 세평들이다. 사람들의 귀에 쏙 들어가게 할 목적으로, 뭔가 극명하게 구분지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간단명료하게 표현하다보니, 보수진영이든 진보진영이든 이런 ‘성급한 일반화’에 대한 반론이 적지 않다.

“우리가 왜 개혁을 안해?”, “내가 왜 종북이야?”라는 반문이 있는 것도 당연하고, “보수가 한국 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웠어”, “진보세력이 정권 잡았을때 경제가 지금보다 좋았어”라는 주장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같은 ‘성급한 일반화’가 어느 정도 한계를 갖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이들 세평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구체적인 사항에서 이론(異論)이 있을 지언정, 방향성 면에서는 대한민국 우파,좌파의 속성을 상당 부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에서 ‘보수혁신특별위원회’를 두어 그간 우파의 문제점들을 개선해보려고 시도하고,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이 통합진보당의 해산결정 이후 좌파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중도, 실용노선 등을 포함한 당 쇄신을 도모하고 있는 점은 좌ㆍ우파에 대한 이들 ‘세평’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 자인하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해산결정이 지하혁명 조직(Revolutionary Organization, RO) 등 현재적 위험성을 근거로 했듯이, 혁신,쇄신은 현재적인 것을 원인으로 한다. 과거 공산주의 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실물경제, 시장경제에 기반한 실용정책을 주도하며 유럽을 호령하는 메르켈 독일 총리나 과거 민중당 활동을 했지만 지금은 보수파의 원칙을 근간으로 혁신을 도모하고 있는 김문수 새누리당 위원장, 과거 김일성 영도론 학습까지 했던 민족해방(NL) 일부 분파 리더로 활동했지만 지금은 실용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새정연의 몇몇 정치인 등 전향한 사람이나 조직의 ‘과거’는 불문에 부쳐도 되겠다.

통진당 해산 결정 이후 국민 시선은 보수진영보다는 이른바 ‘개혁’진영에 쏠려 있다. 새정연이 2.8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점에서도 그렇다. 새정연은 ‘도둑보다 바보가 더 싫다’ 민심이 꽤 오래 지속할 때 ‘바보’ 취급 받으면서 총선, 대선, 보선 등에서 연달아 패퇴했던 정당이다. 새정연을 좌파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한국과 프랑스 석학들이 세계 각국 집권 좌파들의 시행착오를 평가해 집대성한 ‘좌파가 알아야 할 것들’(세르주 알리, 손학규 등 25명 지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펴냄)은 몇 가지 시사점을 준다.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발행인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도 우파의 한 분파일지도 모르며, 우리 국민은 제대로 된 좌파 정권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점을 전제한 뒤, “아직도 좌파가 (집권의) 꿈을 꾼다면, 시시각각 변심하는 유권자들을 의식하는 대신에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일반 대중에 진정성을 갖고서 접근하고, 이를 기초로 정당정치를 구현해야 할 것”이라며 “대중은 좌파에게도 진정성이 담긴, 일관성 있는 정책을 요구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라”고 주문한다.

프랑스 언론인 모리스 르무완은 “사회당 미테랑 대통령이 1981년 ‘삶을 바꾸자’며 집권했지만,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2년 같은 당의 올랑드 대통령이 ‘이제 변화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하는데, (변화는) 모호한 주제”라고 꼬집는다.

드골정부 경제장관 출신인 피에르망데스 프랑스는 “유감스럽게도 정부와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생산량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킬 수도 없고, 그 생산량의 완벽한 분배를 이룰 수도 없으며, 사회 계층 간의 관계를 완전히 뒤집을 수도 없고, 삶의 질을 바꿀 수도 없으며, 학교나 농업이나 화폐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고 냉정하게 지적한 바 있음을 르무완은 상기시킨다.


르무완은 올랑드가 “오늘날 금융시장은 법을 준수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다. 금융 시장과 기업평가 에이전시에 의해 왜곡된 국가적 주권을 다시 세우려 한다”고 선언했지만, 그가 이 약속을 지킬지는 미지수이며, 시스템을 얼기설기 꿰매는 수준에서 만족할 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좌파가 알아야 할 것들’은 좌파의 ‘어정쩡한 정책’이 빚어내는 무능을 꼬집으면서, 선명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이 한국정치를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새정연 의사결정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더욱 선명하게 개혁을 밀고 갈 것인지, ‘여당과의 변별력이 없다’는 지적을 받으면서까지 실용,중도 노선을 견지할지 고민이 더욱 깊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변별력과 선명성보다는 ‘능력 있다’는 점을 국민이 체감할수 있도록, 정치분야, 정책분야, 경제분야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 훨씬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기우에서 덧붙이면, 야당이 아무리 환골탈태한다 한들, 지금처럼 국방문제, 외교동맹 이슈를 마치 여당이 전담할 일인양 내팽개친채 이슈 주도권을 찾아오지 못하거나, 영화 ‘국제시장’에서 집약된 한국의 현대사를 끌어안기 보다는 부정하는 행태를 보일 경우, ‘수권(受權)의 자세’ 부터 의심받으면서 ‘한 방’에 신뢰를 다시 잃을 수도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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