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자기 희생의 대명사 “아버지는 없다”
헤럴드경제| 2015-01-09 11:20
새해 들어 ‘너무나 다른’ 두 가장(家長)의 이야기가 우리사회에 감동과 충격을 던지고 있다. 영화 ‘국제시장(감독 윤제균)’에서 헌신적인 아버지로 등장하는 덕수(황정민 분)와 서초동 세모녀 살인 사건의 피의자 강모(48)씨가 그 주인공이다.

강 씨가 비교적 유복한 환경 속에서도 중산층 탈락의 상대적 박탈감을 견디지 못하고 아내와 두 딸을 죽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을 보면 대한민국이 가장상(象)이 차츰 강인함보단 한 인간으로서의 유약함을 감추지 못하는 쪽으로 변모하고 있단 분석이다.

허구 인물이긴 하지만 덕수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과거 아버지들의 표상이다. 

새해 들어 ‘너무나 다른’ 두 가장(家長)의 이야기가 우리사회에 달라진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사진은 영화 국제시장 덕수와 서초 세모녀 사건의 강씨.

가족을 위해서라면 자기희생도 마다 않고, 2억만리 떨어진 나라에서의 험궂은 일도 피하지 않았던 우리 사회 전통적인 강인한 가장의 심볼이다.

‘내는 그래 생각한다. 힘든 세월에 태어나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격은기 참 다행이라꼬’라는 덕수의 대사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강 씨를 통해 드러난 아버지상은 가장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 고뇌하는 애처로움의 대상이었다.

명문대를 나와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로선 갑작스런 실직과 주식투자 실패란 고비를 넘어서기가 버거웠던 것으로 보인다.

6억원의 대출금을 갚고도 남을 11억원짜리 아파트가 있었고, 아내의 통장엔 3억원이 들어 있었다. 최악의 경우 양가에 도움을 청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실패를 모르고 달려왔던 인생여정과 유독 자존심이 강했던 성격은 그같은 상황을 극복할만한 심적 체력을 만들어주지 못했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강 씨와 유사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년 전 한 대기업 구조조정으로 명예퇴직한 A(54) 씨는 최근 무기력증에 빠져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

회사를 그만둘 때 받았던 퇴직금을 주식으로 절반 이상 잃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부장까지 지냈던 A 씨는 일자리를 다시 구하려고 해도 성에 차는 곳이 별로 없었다.

아내는 A 씨에게 경비나 택시일을 제안했지만 자존심이 상한다며 이를 거절했다. A 씨의 우울증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과거 대한민국의 가장들에겐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아버지 특유의 강함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40ㆍ50대 가장들은 경제적인 풍요로움 속에 자라나 외풍에 쉽게 흔들리고, 최악의 경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가장이 책임감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가족들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동반자살’은 한국에 특유의 가족주의 때문”이라며 “살면서 큰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고 승승장구하던 사람일수록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대처 방안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경원ㆍ서지혜 기자/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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