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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앞서 조선시대 이미 생선회 즐겼다
뉴스종합| 2015-01-18 16:56
[헤럴드경제] 우리나라에서도 생선회는 의외로 오래전부터 즐기던 요리의 하나로 확인됐다. 실제로 현존하는 조선시대 문헌에는 생선회를 즐기는 기쁨을 한시로 노래하는 등 자세한 기록이 드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채종일(기생충학교실)·기호철·신동훈(생물인류학 및 고병리학연구실) 교수와 단국대의대 서민(기생충학교실) 교수 등으로 구성된 공동 연구팀은 2007 년부터 국내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수습된 미이라 등의 다양한 시료와 문헌 등을 바탕으로 고고기생충학적 연구를 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18일 밝혔다.

▶문헌상 생선회 기록 수차례= 문헌상으로는 조선시대 의서인 의방유취(醫方類聚)에 “대체로 생선회는 날 것이며 찬 음식이라 먹으면 입이 개운하기에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는 기록이 있었다.

당시 즐겼던 민물생선회로는 붕어회가 지목됐다. 기록상으로는 사대부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붕어회가 안주로 오르기도 했고, 조정에서도 사도세자가 수라(水刺)를 잘 들지 못하자 홍봉한(洪鳳漢)이 붕어회를 권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조선 전기의 문인 서거정은 ‘붕어회’라는 시에서 붕어회를 채를 썰 듯 가늘게 썰어 먹었다고 했다.

은어회도 즐긴 횟감 가운데 하나였는데 박지원의 편지에 보면 “한 줄기 개천의 은어는 되는대로 회를 쳐서 맑은 못 곡수(曲水)에서 참말로 술잔을 띄워 흘려 봅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밖에도 웅어, 가물치, 쏘가리 등도 횟감으로 자주 쓰였다.

연구팀은 “일제 강점기 이후에나 생선회를 많이 먹었으리라는 통념과 달리 문헌상으로 보면 조선시대에 이미 다양한 민물 어족을 회로 즐기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흡충 감염률 역시 높아졌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즐겨먹은 민물 게= 폐흡충 감염원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민물 게다. 이 중에서도 게의 생식과 관련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음식이 지금도 많은 사람이 즐기고 있는 게젓과 게장이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게를 익히지 않고 날것 상태에서 게장으로 조리해 즐긴 기록이 많다.

서거정이 지은 ‘촌주팔영(村廚八詠)’이라는 연작시에는 게젓을 노래한 부분이 있으며, 산림경제(山林經濟)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등에도 게장 담그는 법이 소개돼 있다.

게장의 경우 간장이나 소금물처럼 짠 재료에 상당히 오랜 시간 담가두고 나서 먹기 때문에 이를 먹고 폐흡충에 감염됐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민간의 전통적인 게장 만드는 법을 채록해 놓았다는 ‘장해속법(醬蟹俗法)’에는 소금과간장 등을 이용해 담근 지 5~6일이면 먹을 수 있다는 설명이 있다.

연구팀은 “담근 지 5~6일이면 폐흡충 피낭유충에 의해 인체 감염이 가능한 시기”라며 “이 방법대로 게장을 담가먹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았다면 폐흡충 감염률이 매우 높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물가재 폐흡충 감영 원인= 민물 가재와 굴민물 가재는 날로 먹으면 홍역(紅疫)을 치료할 수 있다는 속설 때문에 폐흡충 감염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 문헌상으로는 1871년에 간행된 ‘의휘(宜彙)’에 보면 “홍역이 돌 때에는 가재즙(石蟹)을 내어 뜨뜻하게 하여 이를 복용한다”고 돼 있고, 동의보감(東醫寶鑑)에도 인후(咽喉) 질환에 가재즙을 쓰라는 처방이 나온다. 또 광제비급에는 전염병인 이질 증상의 치료에 가재즙을 처방하라는 기록도 있다.

연구팀은 “의서대로 홍역, 인후통, 적리 등을 앓는 환자에게 가재즙을 처방했다면 이 부분이 당시 우리나라 폐흡충 감염률을 높이는 데 있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굴과 관련한 흡충으로는 국내에서 처음 보고된 참굴큰입흡충이 조선시대 미라 2구에서 지금까지 확인됐다. 두 경우 모두 바닷가와 매우 가까운 지역이어서 당시 생굴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상황으로 추정됐다. ‘증보산림경제’에 굴을 회나 굴젓으로 먹는 방법이 소개된 점 등으로 볼 때 당시 해안 지역 사람들을 중심으로 생굴 섭취하면서 참굴큰입흡충에 감염됐을 것으로 연구팀은 분석했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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