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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리치] “삼시세끼 책임져 드립니다”…재벌家 ‘외식대첩’
뉴스종합| 2015-01-23 11:04
2~4세 유학 경험살려 직영 고급 레스토랑·카페 잇단 오픈…위험부담 적고 소프트파워 강화 도움 일석多조
세련된 취향·차별화된 맛 불구 국내 ‘미슐랭스타’ 하나도 없어 아쉬워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홍승완 기자]
혼자 사는 40대 남성 A모 씨는 얼마 전 묘한(?) 경험을 했다. 아침을 즉석 식품으로 먹고 출근한 그는, 점심에는 거래처 관계자와 서울 광화문 근처의 고급 중식당에서, 저녁은 여자친구와 강남구 삼성역의 한 뷔페 식당에서 했다. 퇴근 후 인터넷으로 그날 갔던 식당들을 살펴보니, 같은 대기업에서 직영하는 식당이었다. 즉석 식품을 만든 바로 그 회사였다. 우연찮게 ‘삼시세끼’를 한 기업 브랜드로 해결한 것이다.

재벌가의 외식사업이 소리없이 늘어나고 있다. 헤럴드경제 슈퍼리치팀이 살펴본 결과, 대기업 계열사나 관련 오너들이 경영하는 식당ㆍ카페ㆍ분식점 등 요식업체는 100개에 이른다. 지난 10년 사이 생겼다 사라진 곳까지 합하면 130여곳을 넘었다. 특히 2010년 이후 들어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불거지면서 빵집에서 철수하는 일도 있었지만, ‘레스토랑ㆍ카페’의 숫자는 되레 늘었다. 


▶‘유학파’가 주도하는 재벌가 레스토랑=재벌가의 식당사업 양태는 이전과는 달라졌다. 과거에는 프랜차이즈 형태의 ‘창업’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 들어 독립형태의 고급 레스토랑을 직접 경영하는 사례가 늘었다. 대부분은 서울 강남, 서초, 이태원, 홍대, 가로수길 등 이른바 ‘핫 플레이스’나 고급 백화점 등 최고 상권에 독립된 식당처럼 자리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 이탈리아 등에서 검증된 식당을 ‘그대로 들고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이 같은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식품ㆍ식자재 관련 대기업들이다. 매일유업, 남양유업, 아워홈 등이 대표적이다. 먹거리 사업과 관련없는 기업들 중에도 ‘은근슬쩍’ 식당사업에 발을 올리는 곳이 많다. 유화ㆍ패션ㆍ보일러ㆍ리조트 업체들까지 라멘집, 카레집, 카페, 이탈리안 레스토랑, 돼지고기 구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나름의 이유는 있다. 기존 사업에서 성장의 한계를 느끼다 보니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진입이 용이한’ 요식업에 발을 들인다는 분석이다. 사업확장의 명분도 있다. 유통ㆍ식품ㆍ생활용품 업체의 경우 ‘해석하기에 따라’ 음식사업과 어느 정도 연관을 갖기 때문이다.

위험부담이 적다는 점도 식당사업에 쉽게 뛰어들게 하는 이유로 보인다. 레스토랑은 장사가 잘 안되더라도 손실폭이 10억~20억원선에 그친다. 수천억원 규모의 회사들 입장에선 크지 않은 수준이다. 해외 유학을 경험한 재계 2~4세들에게는 젊은 시절 해외에서 경험한 입맛이나 취향이 자산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딸들에게 레스토랑 운영은 자신의 소프트파워와 세련미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외식경쟁력 강화 VS 굳이 대기업이’=재벌가의 외식사업을 무조건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대기업 자본이 외식산업 전반의 효율화와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한국의 식당 경쟁력은 주변국들에 크게 못미친다. 거리의 식당 숫자는 크게 늘었지만 다양성이나 완성도, 특색에서 턱없이 부족하다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지적이 많다.

국내에선 퇴직자들이 충분한 연구없이 차린 프랜차이즈 식당들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현실이다. 일본은 물론 중국ㆍ홍콩ㆍ싱가포르 등 아시아 주요국들이 하나쯤은 보유하고 있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한국엔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관광대국을 노리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그런 가운데 ‘좀 더 세련된 취향을 가진’ 대기업 식당이 전체 외식 산업 전반에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상장사 주식만 수천억원씩 쥔 재벌가가 굳이 레스토랑까지 해야하냐는 시각도 엄연히 존재한다. 특히 경영수업 차원에서 해외에서 MBA(경영학석사) 학위까지 따온 재계 자녀들이 ‘유학시절 맛있게 먹었던 것을 가지고 들어오는’ 수준의 외식사업 전개는 달갑지 않다.

이런 점에서는 최근 직영 레스토랑의 숫자를 늘리고 있는 대형 유통업체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합리적인 가격과 고객 만족’을 내세워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직영 식당을 입점시키고 있다. 일본 경우 이세탄이나 한큐, 다카시마야 같은 일본의 대표 백화점 식당가에는 직영 레스토랑 대신, 일본 전역의 맛집들이 입점해 있다. 백화점 측이 삼고초려해 전국의 맛집들을 유치해 온다. 최근 국내 백화점에도 이런 사례들이 늘고 있긴 하지만 미흡한 수준이다.

▶대기업, 요식업 인큐베이터 역할도 필요=대기업이 요식업과 만나는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대기업들이 많은 식당을 직접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투자가나 인큐베이터 같은 역할도 찾아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국내 미식가들이 손에 꼽는 일식당 ‘스시효’의 경우가 좋은 예다. ‘한국의 초밥왕’으로 불리던 안효주 스시효 대표가 신라호텔 일식당주방장에서 자기 사업을 시작할 때 매일유업의 김정완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나섰다. 덕분에 대표 식당 한 곳이 문을 열 수 있었다.

이왕 외식사업을 한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한식 세계화나 한국 브랜드 강화, 국내 농축산물의 고급화 등에서 제 몫을 해주는 것도 방법이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글로벌 한식 브랜드 ‘비비고’가 좋은 사례다. 2013년 10월에 개점한 비비고 영국 런던 소호점은 미슐랭가이드 런던판에 2년 연속 등재됐다. 영국인 고객 비중은 80%까지 높아졌고, 연 매출액도 전년 대비 20% 가까이 늘었다.

sw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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